[기고]피델 발자취와 쿠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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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피델 발자취와 쿠바의 미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1. 30.

‘살아서 역사와 전설의 세계로 들어와 영광을 누린 인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피델 카스트로와 100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한 이냐시오 라모네가 피델을 묘사한 대목이다. 2006년 건강상의 문제로 쿠바의 최고 권좌에서 물러난 피델이 2016년 11월25일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피델은 혁명의 이론가, 혁명군 사령관, 새로운 쿠바 정부 수립의 주도자, 쿠바 혁명 체제의 주요 정책 결정자로서 압도적인 위상을 지녔다. 그의 마지막 공식 직함은 국가평의회, 즉 인민권력의회 상임위원회의 의장이었다. 혁명 체제의 쌍두마차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이상을 대변한다면, 피델은 현실의 관리자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이자 기독교인’을 자처한 피델은 갈등과 긴장 상태 속에서 열정적인 지지와 환호, 강력한 비판과 미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엄청난 논란과 영향력의 중심에 있었다.

 

1956년 11월 망명지 멕시코에서 선언한 대로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 경제적 주권 회복, 사회정의를 이루고자 대담한 정책을 추진한 피델은 오랜 경제 봉쇄 속에서도 쿠바에 전례 없는 사회경제적 평등, 비교적 높은 수준의 무상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실현했다. 그가 변혁의 모범으로 삼은 인물은 ‘영원한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와 19세기 말 쿠바 독립 투쟁의 신화적 인물 호세 마르티’였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한 지 이틀이 지난 27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멕시코의 쿠바 대사관 앞에서 애도의 뜻으로 피델의 초상화가 든 액자를 들고 서 있다. 멕시코시티 _ AFP연합뉴스

 

하지만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반대자들은 피델을 잔혹한 독재자, 자유의 억압자, 인권의 침해자 등으로 규정한다. 이는 쿠바에서 쫓겨난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일파 등 반혁명 세력에 대한 처리와 응징 과정, 달리 말해 모든 혁명적 변화의 불가피한 요소에서 강화된 이미지였을 것이다. 물론 정치적 민주주의 구현보다 권력 집중과 대중 동원을 통해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한 여느 제3세계 혁명 투사들과 마찬가지로 피델을 보편적 인권의 대변자나 인도주의자로 규정하긴 어려울 듯하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떤 맥락에서 그런 논란과 대조적 평가가 강화됐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냉전 대립에 근거한 시각의 극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냉전시대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로에 끼친 부정적 영향은 막대했다. 이 지역 지도자들이 대개 이데올로기적 선호에 따라 미국과 소련 중 한편과 긴밀히 협력하고 때로는 국민 대다수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는 발전 방식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사실과 넘치는 편견에서 비롯된 이분법적 묘사와 이데올로기적 재단을 걷어내면 피델의 다른 면모가 엿보인다. 피델은 마르티의 정신과 실천을 계승하려는 민족민주 혁명가, 30대 초반의 젊고 활력이 넘치는 지도자, 정적조차 인정할 정도로 축재하지 않은 검소한 지도자, 3~4시간을 넘기는 공개 연설을 즐기는 놀라운 말솜씨,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로 평가돼왔다. 미국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인권 탄압’을 빼들지만 과거 여러 미국 대통령들이 적극 지원한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군부 독재자들이 쿠바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인권 수호란 정치적 공세의 명분일 따름이었다.

 

피델의 사망은 2018년쯤으로 예상되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권력 이양과 더불어 쿠바인들에게 한 시대의 마감을 의미한다. 쿠바인들에게는 혁명의 성과를 유지하면서 더 자유롭고 빈곤에서 벗어난 사회를 이뤄야 할 난제가 놓여 있다. 불확실한 시대의 막이 오른 셈이다.

 

미국의 공적 제1호로서 수백차례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등 고단한 삶을 살아온 ‘20세기 세계 정치의 마지막 괴물’이 사라졌다. 몬카다 병영 습격 실패 이후 1953년 10월16일 피델이 법정 최후 진술에서 역설한 대로 역사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할까? 12월4일 피델의 유해는 마르티가 안장돼 있는 동남부 도시 산티아고데쿠바의 묘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아디오스, 피델!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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