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브라질의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는 세계 최상위권 에너지 기업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남아메리카를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까지 영업망을 확대한 페트로브라스는 1990년대 중반 국내외에서 낙관적인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신흥대국 브라질의 면모를 대변하는 듯했다. 2008년 근해 해저에서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지를 확인하고 2010년에도 매장지를 더 찾아낸 페트로브라스가 2010년 9월 지분 매각을 추진했을 때, 그 가치는 700억달러를 넘었다. 이는 신주 발행 사상 세계 최대 규모였고, 페트로브라스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4위의 기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몇 년 새 페트로브라스는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었고 2013년 말 부채가 1140억달러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빚이 많은 에너지 기업이 되었다. 2014년에 페트로브라스의 주가는 2008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하고 낙관론이 사라졌다. 또 지난해 3월 한 신문의 보도를 통해 2005년 직전 소유자가 4200만달러에 구매한 미국의 정유시설을 불과 1년 뒤 페트로브라스가 12억달러에 사들인 수상한 거래가 드러났다. 게다가 당시 이 계약을 승인한 이사회 의장이 현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곧이어 호세프는 이 구매 계약이 결함이 있는 보고서의 불완전한 정보에 의해 승인되었다고 밝혔고 과다 지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더욱이 지난해 3월에 체포된 페트로브라스의 전 정유 부문 사장 파울루 호베르투 코스타는 돈 세탁 관련 수사 도중 더 심각한 부패 추문을 폭로했다. 그는 검찰과의 양형(量刑) 거래로 범행을 시인하고 금품 수수 정치인들의 명단과 계약액의 과다 책정을 밝히는 대신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았다. 코스타의 진술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2년까지 그가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6개 대형 건설회사의 경영진이 페트로브라스를 통해 집권 노동자당(PT)을 비롯한 일부 정당의 유력 정치인들에게 수백만달러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고 페트로브라스 역시 이들에게 계약액의 3%를 뇌물로 전달했다. 지난해 10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이런 의혹과 수사 내용은 강인하고 상식을 갖춘 여성 대통령이라는 호세프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집권당을 곤혹스럽게 했지만 호세프의 재선을 막는 걸림돌이 되진 못했다.
브라질 시위대가 12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의미하는 그림을 그린 대형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46만여명(경찰 추산)의 시위대는 수도 브라질리아,상파울루 등 전국 400여개 도시에서 부패·비리 척결과 정치개혁 등을 촉구했다. _ AP연합
재선을 확정지은 뒤 호세프는 페트로브라스와 일부 대형 건설회사 간의 모든 계약과 개인 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페트로브라스 부패 추문이 브라질 사회, 정부, 민간기업의 관계를 영원히 바꾸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이후 수사가 진척되었고 올해 3월 검찰총장은 수뢰 혐의자 54명 가운데 일부 고위 정치인들을 기소했다. 수뢰 혐의자 명단에는 상원의장, 하원의장, 전직 대통령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등이 포함되었다. 수사가 일단락되면서 그동안 연루 의혹을 강력히 부인해온 호세프는 책략의 혐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호세프는 두 번째 임기 초부터 인플레이션, 저성장과 더불어 거리 시위 참여자 수만명의 퇴진 요구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브라질인들은 자국이 세계의 주요 열강으로 부상했다고 득의양양했지만 여전히 그들 곁에 부패와 비효율이 머물러 있다는 뼈아픈 사실을 재확인하고 있다. 특히 되풀이되는 부패는 애먼 피해자들을 양산해냈다. 국영기업 페트로브라스에서 밀려난 수천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정치적으로 임명된 고위 경영진과 정치인들이 자행한 부패와 탐욕의 뒤치다꺼리를 떠맡도록 강요받은 셈이다. 칼부코 화산에서 분출된 재가 칠레의 하늘을 뒤덮을 때, 부패 추문과 불신이 브라질의 하늘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역사에 남을 만한 부패 추문 탓에 고민이 많았을 브라질의 여성 대통령에게 한국의 여성 대통령은 잠시나마 애잔한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고 돌아왔을까?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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