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협상 무용론은 무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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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북핵협상 무용론은 무용하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2. 1.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구체화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과 북핵 협상 무용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과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 대신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결해 미국의 안보위협만을 해소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북한의 태도에는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와 한·미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같은 개념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또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지난해 9월 평양 공동선언은 주한미군 철수와 핵우산 철폐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런 의구심들은 북핵협상 무용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과연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가. 트럼프는 정말로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미사일 동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단계에서는 누구도 확신을 갖고 단언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폐기 의지가 불분명하고 트럼프의 속셈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대화와 협상을 중단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비핵화는 북한에만 요구되는 의무가 아니다. 미국이 말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개념 속에는 북한의 핵무기, 핵물질, 장비를 제거하는 것뿐 아니라, 북한이 핵을 포기한 뒤 다시 핵무장의 길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것도 포함돼 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게 핵을 폐기하는 것은 북한의 의무지만, 북한이 핵을 폐기한 뒤 다시 핵무장의 유혹이나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안정적인 안보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미·중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관련국들의 의무다. 북한에 비핵화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요구하려면 미국 역시 핵폐기 이후 안보환경을 해치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지대화’ ‘핵위협 제거’ 등의 표현에 집착하는 것은 미군철수와 핵우산 철폐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 핵전략자산이 한반도에 미치지 않도록 만드는 것만이 핵위협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 핵강국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남과 북이 중·러의 핵무기를 생존과 직결된 안보위협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중·러와 정상적인 국교를 맺고 있고 우호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가 되면 미국의 핵위협이 사라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북한이 훗날에 대비해 미군철수와 핵우산 철폐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두려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요구를 할 것인지는 미국과의 협상 전개와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미사일 동결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섣부른 예단이다. 동결은 비핵화를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다. 미국의 최우선 목표가 자국에 대한 위협 해소인 것은 틀림없지만, 핵비확산체제에 대한 도전을 막아내고 국제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목표다. 핵·미사일 동결이 이뤄진다면 한국은 미·중을 설득하고 한국과 같은 입장에 처한 일본과도 협력해 조속히 핵폐기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핵 위기 발발 이후 북한이 핵문제에서 보여준 완강한 태도와 반복되어온 협상 실패, 이에 따른 불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진전된 북한의 핵능력 등을 감안했을 때 북한의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있다. 또한 동맹의 가치를 거침없이 훼손하고 제멋대로 일을 끌고나가는 트럼프의 돈키호테식 돌진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도 그런 북한을 강하게 추궁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큰일 났다. 이런 협상은 그만둬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북핵 협상은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걷는 여정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가는 능동적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핵 협상을 지지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를 정치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법을 가급적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혹여 잘못된 길로 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을 위한 비판과 망하기를 바라는 저주는 구별되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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