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쿠바 국교 정상화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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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미·쿠바 국교 정상화를 환영한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2. 18.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어제 각각 워싱턴과 아바나에서 양국 간 53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한다고 선언했다. 소련 붕괴로 냉전이 종식된 지 23년 만이다. 늦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냉전의 유물을 걷어내기로 결단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양국은 곧 국교 정상화 협상을 시작하게 된다. 카스트로 의장의 말대로 양국 간에는 “여전히 인권과 대외정책, 주권 문제 등의 분야에서 심각한 이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견은 국교 정상화의 장애물이 아니다. 정상적인 관계란 차이가 없는 관계가 아니라, 차이를 둘러싸고 대결하는 대신 타협하고 조정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미국은 ‘미국의 뒤뜰’이라는 중남미에 강대국의 논리를 관철했다. 미국은 시민들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해온 반민주적인 중남미 독재정권을 단지 친미적이라는 이유로 지지하고 후원했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자유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세운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로 붕괴시킨 피노체트 장군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 피노체트 정권이 미국을 믿고 저지른 고문과 살인, 인권탄압 행위로 시민들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으며 진상 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은 이런 문제에 대해 한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미국은 피그만 침공, 중앙정보국(CIA)의 카스트로 암살 기도, 경제 봉쇄로 쿠바 시민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지지하던 미국이 쿠바 혁명 이후 이 작은 섬나라에 가했던 이 같은 온갖 부도덕한 행위는 미국의 핵심 정책이었다. 따라서 미국이 쿠바에 사과하지는 않더라도 쿠바 봉쇄를 민주주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기만적 태도만은 삼가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미국이 쿠바와 53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이날 국영방송 연설을 통해 양국 간의 국교 정상화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_ AP연합


쿠바 봉쇄의 실질적 효과는 카스트로 체제의 공고화였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성명에서 “미국의 쿠바 봉쇄는 민주적이고, 번영하며 안정적인 쿠바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음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오히려 미국의 봉쇄 정책은 이 지역과 전 세계의 파트너 국가들로부터 미국이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고, 중남미 대륙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제한했다”고 인정했다. 봉쇄 정책으로 체제 전환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됐지만, 새삼 그의 실패 인정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도 국제사회는 아직도 문제 국가에 대해 제재와 압박 중심의 접근을 하고 있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런 조치가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묻자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적대국가의 정상들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대로 이란에 이어 쿠바에 대해서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예외이다. 물론 북한은 미국과 협상·결렬을 반복하면서 미국을 지치게 했다. 쿠바와 달리 핵과 미사일을 보유했다는 점도 다르다. 인권침해 문제도 있다. 바로 그런 심각한 상황은 더욱 북한 문제를 방치할 수 없게 만든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강요하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화와 협상이 개혁을 독려한다는 쿠바의 교훈을 북한에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에서 실패한 정책은 북한에서도 실패한다는 사실을 새기며 자신의 마지막 매듭을 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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