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이 연일 동맹국과 우방들을 향해 ‘반중국 전선’ 참여를 채근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올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회원국이 아닌 한국과 러시아, 호주, 인도 등 4개국을 초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G7이 낡은 회의체이고, 전 세계적 문제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다음날인 31일(현지시간)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중국의 군사 위협에 맞설 파트너로 인도, 호주, 일본, 브라질, 유럽과 함께 한국을 열거했다. 경제, 인권에 이어 군사 분야에 걸친 전방위적 ‘반중 블록’을 구축하려는 미국이 우방들을 상대로 줄세우기에 나선 형국이다. 미·중 모두와 잘 지내야 할 한국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올해 G7 의장국이어서 회원국이 아닌 나라들도 초청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G7을 ‘낡은 회의체’라고 평가한 걸 보면 이를 대체할 새로운 회의체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 G7에 참석해 코로나19 국제협력 등을 적극 활용할 경우 한국으로선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발언권을 키우는 긍정적인 측면이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이 “중국과 관련된 미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통적인 동맹국을 불러 모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듯이 이 회의는 반중 국제질서 구축을 꾀하는 자리가 될 공산이 크다. 참여 자체가 한·중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반중’을 이슈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속내가 반영돼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의 ‘반중’ 기조가 상수(常數)화하는 흐름이긴 하지만 이토록 노골적인 편가르기에 편승하는 것은 위험하다. 트럼프가 열거한 러시아, 호주, 인도와 한국을 동렬에 놓고 참여 여부를 판단할 수도 없다. 지정·지경(地經)학적 여건에서 한국은 이들 나라보다 더 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한번 회의체에 들어가게 되면 도중에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한국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더욱 강도 높게 요구받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한국이 외교원칙을 분명하게 세우고 국제사회에 발신해야 한다. 모든 외교 사안을 한·미 동맹으로 귀착시키는 ‘동맹 환원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한국이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과 지켜야 할 가치를 대외적으로 분명히 표명해야 미·중에 휘둘리지 않는다.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확산하는 흑인 시위로 드러난 미국의 인종 차별 (0) | 2020.06.03 |
---|---|
[사설]일본, 수출규제 무의미한 ‘시간끌기’ 당장 그만두라 (1) | 2020.06.03 |
[사설]미 ‘흑인 사망’ 시위 확산, 교민 안전 문제없나 (0) | 2020.06.01 |
[사설]일국양제·민주주의 가치 말살한 중국의 홍콩보안법 통과 (0) | 2020.05.29 |
[사설]중국의 ‘홍콩보안법’ 추진, 국제사회가 우려한다 (0) | 2020.05.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