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려스러운 미국의 핵무기 폐기조약 파기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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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우려스러운 미국의 핵무기 폐기조약 파기 방침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0. 2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옛 소련과 체결한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의 파기를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는 여러 해 동안 조약을 위반해 왔다”며 “우리는 조약을 폐기하고 탈퇴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2~23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이 방침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INF는 1987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으로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약에 따라 양국은 1991년 6월까지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 2692기를 폐기했다. 그 후 러시아가 단거리 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 시리즈를 개발하고, 미국도 유럽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에 나서면서 INF는 사실상 형해화됐다. 그럼에도 INF는 미·러의 핵경쟁을 억제하는 대의명분이 돼왔다. INF 빗장이 사라질 경우 미국과 러시아, 중국 사이에 핵경쟁이 벌어질 우려가 크다.

 

트럼프 행정부의 INF 파기 가능성은 일찌감치 예견돼 왔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수정주의 국가들”이라며 “최강의 군사력 구축을 통해 힘에 의한 평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지난 2월 발표한 핵 태세검토 보고서에서는 중·러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최강의 핵 능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모르지 않지만 북한에 핵 포기를 종용하면서 스스로는 핵개발을 본격화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열강들의 MD 경쟁 격화로 신냉전의 불똥이 한반도로 튈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러 핵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레이더의 기능 향상을 추구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경북 성주에 배치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중·러 미사일 추적용으로 활용하려는 욕구도 커지게 된다. 하지만 봉인된 사드 문제가 다시 열리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방해하는 일은 결코 용납해선 안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INF 파기 이후의 상황전개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지혜로운 대응전략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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