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EU에 이어 유엔에서도 지적받은 ILO 핵심협약 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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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EU에 이어 유엔에서도 지적받은 ILO 핵심협약 비준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1. 6.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에 대해 구체적 일정과 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2017년 10월 한국에 비준을 최종 권고하고, 지난 4월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평가한 결과를 지난달 9일 통보한 것이다. 파국으로 끝난 정기국회 폐장 전날이었다. 위원회는 “ILO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 비준을 위한 한국 정부의 계획과 조치를 평가하지만, 비준을 위한 시간 정보가 부족한 점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EU가 지난달 30일 “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며 전문가 패널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유엔도 직접 조속한 비준을 압박하고 나선 셈이다. 올 것이 겹쳐 온 격이고, ‘약속을 지키라’는 국제사회 요구는 당연하다.


ILO 핵심협약 87호·98호는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한 기본규약이다. 한국에선 실업자·해고자가 있다고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공무원노조 가입 대상 확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대학교수 등의 노조 가입 허용 문제가 걸려 있다. 정부는 제29호(강제노동 금지)까지 3개 협약 비준안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는 움직이지 않았다. 논의가 장기 공전하자 환경노동위원회를 향해선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자유한국당과 사용자단체, 재계 등이 “시기상조”라며 막아선 여파가 컸고, 노동계가 단협기간 3년 연장 입법안 등에 고개 젓는 사이 여당의 ‘정기국회 우선처리 리스트’에서도 빠졌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ILO 100주년 총회에서 약속한 ‘정기국회 처리’는 완전히 허언이 돼버렸다. 이대로라면 비준안은 파국으로 치닫는 20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가타부타 논의도 없이 21대 국회로 넘기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일 뿐이다.


유엔의 지적과 EU의 전문가 패널 소집은 ‘같은 판단’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권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고, 정부 노력이나 개선 약속마저 ‘함흥차사’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6년 연속으로 국제노총이 한국에 ‘노동권 최악 5등급’을 매기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유엔 권고는 강제성이 없지만, ‘노동후진국’이라는 주홍글씨로 보면 된다. EU 조사는 무역 제재를 낳을 수 있는 위험도 품고 있다. ‘노동 존중’ 약속이 머쓱해진 정부는 국제사회의 차가운 ‘노동 총평’을 무겁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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