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북한 비핵화와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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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세상읽기]북한 비핵화와 그 적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11. 19.

북한 비핵화 꿈이 2년도 채 되지 않아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날 듯하다. 지나치게 낙관했거나 성급했던 까닭에 남·북·미 모두 비핵화 길(로드맵)에서 어긋났다. 북한 비핵화라는 거대한 담론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작금의 한반도 안보 상황이 야기하는 (조선인민군이 오래전 한반도에서의 다음 전쟁은 재래식전쟁이 아닌 핵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처럼) 위협과 불확실성은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작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에 맞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방남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빠르게 순항했다. 남북 정상 간 직통전화까지 개설되자(2018·4·20) 장삼이사들은 남북한 두 정상이 언제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일주일 후 판문점(4·27)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천명했다. 이어진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등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거듭 확인됐다. 신(新)한반도 여정의 서막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이 장기 뇌사상태다. 비핵화를 통해 북한에 궁핍과 절망으로부터 탈주(脫走)의 길을 터주고자 했던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난망한 처지다. 세간의 지적처럼 비핵화 정의가 합의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서로의 계산법이 맞지 않아 사달이 난 것일까. 트럼프와 김정은은 정말로 비핵화를 할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일까. 서로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만책이 아니라면 비핵화 발목을 잡는 세력이 있다는 의미인가. 나는 비핵화에 재를 뿌리려는 세력들이 비핵화 길목 곳곳에 잠복해 있다고 추정한다. 


우선 김정은을 둘러싼 200~300여명의 지배 엘리트들을 비핵화의 적들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이 보기에 비핵화는 체제를 말살하는 아편과 같은 존재이다. 평양 엘리트들의 주된 관심은 북·중동맹 틀 속에서의 현상유지이다. 비핵화 논의가 깊어질수록 현상타파는 불가피하다. 북한 최상부 기득권층인 이들은 자신들의 체제 불안을 대외적 군사적 모험으로 표출할 수 있다. 수세(守勢) 안에 공세(攻勢)를 취하는 격이다. 


둘째,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들 수 있다. 군수산업은 지구촌의 크고 작은 전쟁과 각종 분쟁을 주식(主食)으로 하면서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중심축이 됐다. 군산복합체의 강고한 먹이사슬에 놓여있는 집단은 정계, 관계, 재계, 학계, 언론계, 싱크탱크, 무기중개상 등 직군도 다양하며 국적을 불문한다. 이들 거대 집단의 폐단이 얼마나 심각했기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 고별연설(1961·1·19)에서까지 군산복합체의 폐해를 지적했을까. 


셋째,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력의 신뢰에 회의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일군의 사람들이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북핵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독자적 핵무기 개발임을 주창하는 사람들이다. 핵무기의 힘을 욕망하는 이들의 비핵화에 대한 저항은 이미 ‘핵무기가 배태된 저항’이다.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물론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 경우 닥칠 후과(後果)에 대해서도 애써 침묵한다. 따라서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오래 생각해보는 비핵화 길의 대척점에 놓여있는 ‘관념적 핵무장론’은 자기만족이자 무책임한 선동과 진배없다. ‘눈에는 눈’의 보복은 우리 모두를 장님으로 만들고 만다. 


판문점, 평양, 싱가포르 그리고 하노이에서 서로 주고받았던 말들을 하나하나씩 곱씹어야 할 때다. 중단(stopping)이 곧 종결(ending)을 뜻하지는 않지만 비핵화 협상 중단으로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되고 나아가 비핵화에 비협조적인 세력들의 입지가 오히려 강화되는 기제가 작동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일본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북한의) 금강산관광 시설물 철거 요구 등과 함께 비핵화 협상 교착이 문 대통령에게는 손오공의 머리를 조이는 삼장법사의 긴고주가 됐다. 삼장법사는 나쁜 동기로 긴고주를 외는 일은 없다고 했는데,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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