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백 | 연세대 HK연구교수
동북아에서 영토를 둘러싼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대만명 댜오위타이) 해상에서 일본이 정한 영해 안으로 대만 순시선이 들어가면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서로 물대포를 쏘며 충돌했다. 일본에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해 온 대만까지 나서서 일본의 국유화 조치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가운데)과 대만 해안순방서 경비선(아래)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25일 물대포를 쏘며 대치하고 있다.이날 대만 어선 수십척은 자국 경비선의 호위를 받으며 이곳 해역에 진입했다.
(경향신문DB)
이런 가운데 중국은 신화통신 홈페이지를 통해 ‘댜오위다오는 중국의 고유 영토’라는 제목의 백서를 25일 발표했다. 중국은 명 왕조 시기인 1403년에 완성된 책에서 댜오위다오라는 이름이 처음 기재된 이래 이곳이 자신의 고유영토였는데,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해 대만과 그 부속도서인 댜오위다오도 일본에 할양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한때 이 섬을 관할했지만, 1950년대 들어 미국이 자신의 위임관리 범위에 섬을 포함시켰고,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할 때 ‘남몰래’ 넘겼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중국은 일본의 언행이 “세계 반파시즘전쟁에서 승리한 성과에 대한 부정과 도전”이라며, 영토 주권을 지킬 결의와 의지를 확고하게 갖고 있다고 밝히며 백서를 끝맺고 있다.
25일에 있었던 중·일 외교장관 회담 때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도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일본 측에 국유화 조치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외상조차 회담이 ‘험악했다’고 말할 정도로 양측 간의 입장 차이는 선명했다고 한다. 역사문제의 측면을 적극 부각시키려는 중국의 행보는 일·중 외교장관 회담보다 하루 전에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의 때도 확인됐다. 양측은 올바른 역사인식이 담보돼야 동북아 지역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합의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이미 결정한 국유화 조치를 철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문제라는 측면을 무시하고 현상 변경을 시도한 일본의 조치를 중국 정부가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그동안 학교교육을 통해 댜오위다오가 중국 땅이라고 강조해 왔던 역사인식을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중국 국민의 저항을 자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스스로 설정한 국가의 3대 핵심 이익 가운데 하나인 국제안보 영역이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중·일 양국이 갈등을 관리하자는 데 합의만 해도 다행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외교적 해법만을 추구하면 그것은 문제를 ‘봉합’하는 것에 불과하다.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문제로 한·일 간의 외교 갈등이 첨예했을 때, 그리고 21세 들어 중국의 동북공정을 둘러싼 한·중 간의 역사갈등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봉합으로 갈등을 관리해 왔다. 그 결과 두 문제로 인한 갈등이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으며, 인식의 격차 또한 커짐으로써 국민 상호간의 불신의 벽이 높아져 왔다.
봉합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 기본은 역사문제를 해결한다는 차원의 접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과 북방영토를 둘러싼 러·일 간의 마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와 민간 차원을 불문하고 역사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축적하는 과정은,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는데 유리하면서도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국가 주권의 경계를 넘는 지역차원의 미래를 건설하려는 전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전망이 현실화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외교는 여기까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지만, 한·중 외교장관 회담 때 한국 측은 그렇지를 못했다.
한·중·일 간의 영토갈등이 이렇게 오랫동안 격렬하게 진행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지금이, 중·일의 틈바구니에서 한국 외교의 국제적 입지를 넓히면서도 지역 미래를 제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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