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회담, 그 후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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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싱가포르회담, 그 후 1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6. 11.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싱가포르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트럼프였기에 회담이 가능했고 트럼프이기에 뜻밖의 성과가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북핵 협상 역시 트럼프식 협상 전략의 한계에 묶여있다는 지적이 다수다. 


뉴욕타임스는 협박을 기반으로 하는 트럼프의 협상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가혹한 조치로 상대방을 위협하고, 마감 시한을 설정하고, 양보를 압박하다가, 불완전한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파국을 피하고, 자체적으로 승리를 선언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트럼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_AP연합뉴스


북·미 비핵화 협상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북한은 2017년 11월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 발사를 이어갔고, 트럼프는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 ‘완전한 파괴’라는 말로 위협했다.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특사외교로 국면이 급변했고 친서외교를 통해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양측은 회담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송환 이란 네 개의 기둥으로 이뤄진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합의 이행을 위한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고, 그럼에도 트럼프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성과로 내세우며 성공론을 펴고 있다. 


트럼프의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본다면 북핵 협상은 아직 한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북·미는 한반도 비핵화의 최종 상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비핵화 달성을 위한 로드맵도 그리지 못했다. 트럼프는 선 비핵화 대 선 제재완화로 맞붙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빈손으로 걸어나오면서 북한 비핵화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대북 관여 정책이 활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다. 일각에서는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전략적 인내 전략을 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는 집권 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핵 문제가 곪아 터지게 만들었다”며 폐기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병행하는 정책 기조를 제시했다. 하지만 1년 간의 관여 정책이 한계에 봉착하자 결국 한층 강화된 대북 제재에 기반한 수정된 전략적 인내로 기울고 있다. 2020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입장에서 미국민을 향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았다는 선전만으로 정치적 효과는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트럼프의 대북 정책이 기존 정부의 실패한 정책들과 차별점을 만들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지금이다. 버락 오바마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이란 원론적 합의를 구체적 실행으로 옮기는 첫 번째 미국 대통령이 돼야 한다. 트럼프가 진정한 협상의 기술을 보여줄 때다. 때문에 트럼프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1년만에 대북 제재만 믿고 전략적 인내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관여에 나서야 한다. 협박에 기반한 트럼프식 협상 공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협박이 아닌 상호 존중에 기반한 협상이 필요하다. 지지층만 보는 정치적 과시가 아닌 실질적 성과가 중요하다. 


북한은 올해 연말을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상태다. 트럼프가 전략적 인내로 돌아서고 북·미 대화가 결국 단절된다면 내년부터 다시 2017년 때와 같은 위기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 대선에 가까이 갈 수록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더 큰 정치적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북한 역시 비핵화 로드맵 조차 내놓지 않으면서 제재 해제만 요구할 때가 아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항공모함과 같다는 말이 있다. 방향을 선회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돌면 다시 방향을 틀기 어렵다는 의미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후에도 대북 관여 정책이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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