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진화하는 일본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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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아침을 열며] 진화하는 일본공산당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0. 25.

공산당이 일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2년이었다. 전후 초대 당 서기장을 지낸 도쿠다 규이치(德田球一) 등이 중심이 돼 결성한 일본공산당의 강령은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이었다. 정치면에서 ‘군주제와 귀족원 폐지’ ‘18세 이상 모든 남녀에게 보통 선거권 부여’ ‘집회·결사·출판의 자유’를 요구했다. 경제에서도 ‘8시간 노동 실시’ ‘실업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 및 최저임금제, 누진소득세에 따른 과세 실시’ 등 ‘민주적’ 요소를 가미했다. 하지만 ‘제국 일본’에서 공산당의 활동은 불법으로 규정돼 탄압을 받았고, 2년 만에 해산하게 된다.

일본공산당은 1926년 재결성됐고, 이듬해 총선에서는 일부 인사들이 노동농민당 후보로 출마했다. 야마모토 센지(山本宣治)가 사상 첫 ‘일본공산당 계열 의원’으로 의회에 입성하기도 했지만 이들에게 ‘해뜰날’은 먼 얘기였다. 1928년 치안유지법에 따라 약 1600명의 당원·지지자가 일제 검거되면서 사실상 와해됐다. 야마모토 의원은 그해 우익단체 회원의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일본공산당이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였다. 그러나 사상 투쟁으로 인한 분열과 재결성 등 부침을 겪었고, 1955년 7월 열린 제6회 전국협의회에서는 그간 고수해왔던 중국혁명방식의 무장투쟁 노선을 포기하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55년 체제’로 자민당과 사회당이란 양대 정당이 입지를 굳힌 일본 정치권에서 공산당의 영향력과 역할은 미미했다.

그런 일본공산당이 1990년대 이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사상과 이념에 치중하던 과거 이미지로부터 탈피해 생활정치로 눈을 돌리는 한편 ‘민생 우선’을 표방하며 ‘풀뿌리 정치’에 전념하면서다. 경제위기 속에 날로 확대되는 빈부 격차 문제를 정치권이 외면하자 유권자들의 시선이 공산당 쪽으로 향했다. 지방선거에서 약진하고, 당원수도 크게 늘렸다. 1999년에는 당의 외교 방침을 변경, 해외 공산당이 중심이었던 교류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2012년 5월을 기준으로 연수입의 1%를 당비로 내고 당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赤旗)’를 구독하는 진성당원수는 25만4000여명에 이른다. 전년에 비해 당원이 1만여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의회에서도 공산당 의석수는 현재 중의원 475석 가운데 21석(4%)을 차지해 민주당과 유신당에 이어 제3야당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참의원은 242석 중 11석을 확보해 민주당에 이어 제2야당에 올라 있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공산당은 과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1968년 미야모토 겐지(宮本顯治) 서기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에게 ‘한국 침략’ 방침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북한이 김일성에 대한 예찬과 선물 등을 일본공산당에 요구하면서 악화했다. 북한 노동당과는 1983년 버마 아웅산 테러를 강하게 비판한 것을 계기로 관계가 끊겼다. 지금도 김정은 정권이 내건 핵개발과 경제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는 ‘병진노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_연합뉴스


최근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안보법 성립에 맞서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야권이 공동 대응하자고 제안하며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일본공산당 위원장은 “모든 정당·단체·개인이 공동으로 ‘전쟁법 폐지를 위한 국민연합정부’를 수립하기를 제안한다”며 이를 위해 “야당 간 선거 협력이 불가결하다”고 밝혔다.

전망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화답했고, 유신당과도 이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일본공산당은 비록 한 자릿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5% 안팎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독자적으로 후보를 내 온 공산당이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과 손을 잡고 후보 단일화를 할 경우 집권 자민·공명 연립에 적잖은 타격을 안겨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야당이 승리하면 개헌 발의선인 참의원 의석 3분의 2 이상을 확보해 ‘보통국가 일본’의 길로 나아가려는 아베 총리의 질주에 제동을 걸 것이다.

하지만 일본공산당 제안의 성공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일본 사회의 특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공산당이 쏘아올린 야권 연대의 신호탄에 보수적 유권자들이 호응할지 미지수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양대 정당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으면서도, 변화하는 정치·사회·경제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진화시켜 온 일본공산당이 앞으로 존재감을 더욱 확연히 드러낼 것이란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조홍민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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