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 없는 ‘민주주의’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언론 자유 없는 ‘민주주의’

by 경향글로벌칼럼 2021. 10. 27.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지도하고 올바른 정치 방향과 여론의 방향, 가치 지향을 견지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중국 국가신문출판서와 인력자원사회보장부가 지난 15일 내놓은 언론인 교육 규정의 내용이다. 이 규정은 신문·방송·인터넷 등 허가된 모든 매체에 종사하는 언론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규정에 따르면 기자증을 소지한 모든 언론인은 내년부터 연간 90시간 이상 인력자원사회보장부나 성급 이상 지방정부의 관련 부서 등이 주관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 내용에는 정치이론과 법률, 직업윤리뿐 아니라 업계 발전에 필요한 신지식과 신기술 등이 포함돼 있지만 이를 사실상의 사상 교육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존에 언론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사상 교육을 모든 기자들에게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내년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앞두고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라며 “더 엄격한 통제는 일당독재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는 어떤 뉴스도 보도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했다.

 

중국의 언론 통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중국 기자들은 5년에 한번씩 기자증을 갱신하기 위해 시험을 치른다. 이 시험에는 2019년부터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에 관한 내용이 추가됐다. 이번 언론인 교육 규정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언론을 당의 선전도구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당과 정부에 대한 비판은 용납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최근 한 언론인이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를 비판했다 공안에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언론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지난 20일 인터넷에서 전파 가능한 언론 매체 명단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당과 중앙·지방정부의 관변 사이트가 대거 포함돼 있다. 반면 경제매체 차이신(財新) 등 일부 유력 매체는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은 포털사이트에서 해당 매체의 기사를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외신은 이를 “중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보 출처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조치”라고 해석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이달 초 신문방송업을 공유자본에만 허용하는 방안도 내놨다. 민간자본이 언론 매체를 운영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것으로, 관영매체를 통해 여론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앞두고 이런 조치가 잇따라 취해지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 중국 지도부의 입에서는 요즘 ‘인민 민주’ ‘중국식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부쩍 자주 나온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비판하며 체제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쓰는 표현이다.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2명의 언론인을 선정했다.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식 민주주의는 아마도 다른 전제조건을 갖고 있는 듯하다.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후 “홍콩에 문자옥(文字獄)이 왔다”는 한 현지 매체의 외침이 새삼 뇌리를 스친다. 문자옥은 중국 왕조시대에 행해지던 비판적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을 일컫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들은 여전히 문자옥에 갇혀 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