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앙드레 말로의 <희망>,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로버트 카파의 ‘어느 병사의 죽음’…. 모두 스페인 내전(1936~1939)에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작가들 스스로 의용군·종군기자 등으로 공화군을 위해 총을 들고 싸우거나 작품으로 그들을 지원했다.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파시스트 군부·왕당파가 선거로 세워진 사회주의 공화정부를 뒤엎자 세계 지식인들은 분노했다. 스페인 공화정을 지키자며 전장에 뛰어들었다. 서방 정부들의 중립 표방을 비판하며 개인적으로 지원에 나선 것이다. 극좌파부터 아나키즘까지 다양한 이념의 소유자들이었지만 뜻은 하나, 평화와 민주주의 수호였다.
‘국제여단’이란 이름의 의용군에는 50여개국에서 온 3만여명이 참전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국적과 인종·직업·종교가 제각각이었다. 유대인과 미국의 흑인 반파시스트 운동가들도 있었지만, 특히 파시스트 정권이나 우익 독재에 밀린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폴란드 출신들이 많았다. 이들은 자국에 이어 스페인마저 파시스트에 넘길 수 없다는 신념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그 대열에는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프랑스 사상가 시몬 베유 등이 있었다. 훗날 유고의 지도자가 된 요시프 티토도 게릴라전을 벌였고, 서독 총리가 된 빌리 브란트도 종군기자가 되어 공화파의 활약상을 전했다.
러시아에 항전하는 우크라이나로 각국의 의용군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 숫자가 이미 1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 때와 전개 양상이 비슷하다. 미국과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직접 지원을 하지 않자 민간인들이 나서고, 이력이 제각각인 점이 그렇다. ‘우크라이나 수호 국제부대’란 명칭도 스페인 국제여단을 연상케 한다.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는 다국적 의용군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적지 않은 압박이 될 것이다. 연대의 정신은 드높아도 국제현실은 냉혹하다. 1939년 스페인 인민전선은 패배했고, 이후 36년간 스페인에서는 프랑코의 철권통치가 이어졌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결과가 달랐으면 좋겠다. 국제연대의 힘으로 침략을 막는 시대가 열리기를 기원한다.
도재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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