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백신 불평등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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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백신 불평등 시위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12. 21.

항의시위 벌이는 스탠퍼드 병원 전공의들 / 트위터 캡쳐

지난 8일 영국 정부가 90세 할머니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처음 접종하며 ‘V데이(승리의날)’를 선포한 후 세계 각국의 ‘V데이’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연내 접종을 예고한 나라만 30개국을 넘는다. 하지만 희망의 싹을 먼저 틔우는 부자 나라들 안에서도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먼저 맞겠다’ ‘공평하게 맞자’는 백신 다툼이 줄잇고 있는 것이다.

 

미 스탠퍼드대학 병원에서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화이자 백신 우선 접종에서 빠진 전공의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1300명이 넘는 현장진료 레지던트 중에서 접종자는 7명에 그치고 원격진료하는 병원 고위직과 학교 간부들, 환자와 밀접접촉 기회가 없는 외과 의사 등이 명단에 들어간 게 발단이다. 전공의들의 거센 반발에 병원 측은 알고리즘 오류라며 명단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백신 우선 접종은 해프닝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미국에선 일부 부유층이 수만달러를 병원에 기부할 테니 백신 접종 순위를 앞당겨 달라고 새치기 요청을 하고, 백신 거부감이 큰 지역에선 백신을 맞으면 80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는 보도가 동시에 나온다. 최종 치료제가 아닌 백신 접종의 목적은 집단면역을 형성해 바이러스 확산을 서서히 멈춰가는 것이다. 최소 60%의 국민이 면역력을 갖춰야 효과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효율적으로 감염확산 속도를 늦추려면 누가 먼저 백신을 맞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의료종사자, 고령층과 만성 질환자, 비대면 사회의 필수 노동자 등이 접종 우선순위로 꼽히고 있다.

 

코로나19 상황과 너무나 비슷해 다시 주목받는 영화가 있다. 2011년에 나온 <컨테이전>이다. 133일 만에 백신을 개발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영화는 막판에 한정된 백신을 누구에게 먼저 줄 것인가를 두고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국제범죄와 가짜뉴스, 병원 고위간부의 백신 빼돌리기까지 꼬리 무는 세상은 결국 추첨으로 뽑힌 날짜가 생일인 사람들에게 백신을 접종하면서 질서를 잡아간다. 영화와 다를 바 없는 실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분명한 것은 잘사는 나라들만, 부유층만 안전하다고 코로나19가 끝날 수 없다는 엄혹한 현실이다. 한국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송현숙 논설위원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news.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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