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백신 새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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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백신 새치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21. 2. 8.

뾰족한 주사기 바늘 끝에 맺힌 백신 방울에 ‘COVID-19’(코로나19)라는 글씨가 반사돼 비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패스트푸드점 두 곳이 있다. 한쪽은 손님들이 구불구불한 줄 서기를 하는 곳, 다른 쪽은 네 줄로 나눠 서는 곳이다. 사람들은 어느 쪽을 택할까. 30여년간 ‘줄 서기’를 연구해 ‘줄 박사’(Dr.Queue)로 통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리처드 라슨 교수의 실험 결과 손님들은 전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줄로 늘어섰을 때 대기 시간이 네 줄로 설 때보다 두 배나 되는 데도 상관없었다. 한 줄로 서면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주문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 내가 더 기다리는 한이 있어도 새치기는 용납 못한다는 ‘줄 서기의 심리학’이다. 라슨 교수는 “사람들은 줄을 섰을 때 대기 시간보다 공정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분석했다.

 

줄 서기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누군가 선착순이라는 원칙과 질서를 깨뜨리고 공정성을 해치려 하면 사회 구성원의 분노와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새치기가 바로 그런 행위다. 라슨 교수는 사람들이 새치기에 분노하는 기저에는 공정함에 대한 인간 본능에 가까운 욕구가 자리한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에서 코로나19 백신 새치기 사례가 잇따라 공분을 사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7일 로드아일랜드주의 병원 이사와 직원, 네바다주의 지방법원 판사 등이 인맥을 동원해 새치기 접종한 사실이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뉴욕의 피트니스 강사는 ‘교육자’라고 신분을 속여 백신을 맞고 주위에 자랑했다 된서리를 맞았다. 조지아주에서는 접종 자격을 증명하는 QR코드를 공유하는 수법으로 주민 수백명이 백신을 먼저 맞기도 했다. 캐나다의 카지노 재벌 부부는 접종 진도가 빠른 원주민 마을로 전세기를 타고 가서 원주민 행세를 하다 덜미를 잡혔다.

 

백신 새치기는 이기주의, 비양심의 전형이다. 저만 살겠다고 고령자나 취약계층 이웃을 위험에 몰아넣는 반사회적 범죄다. 백신 접종이 임박한 국내에서도 남의 일로만 여길 상황이 아니다. 이달 초 국회에서 부정 접종자에 대해 1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그쯤으로 새치기를 막을 수 있을까. 백신 새치기는 물건을 먼저 사려는 수준이 아니다. 타인의 생명을 가로채려는 중범죄다. 엄벌해야 마땅하다.


차준철 논설위원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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