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빌·멀린다 게이츠 부부의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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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빌·멀린다 게이츠 부부의 이혼

by 경향글로벌칼럼 2021. 5. 6.

빌 게이츠 부부 / 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나 친족을 부르는 다양한 호칭이 있다. 그 호칭을 통해 남과는 다른 끈끈한 관계임을 확인한다. 때론 남을 배척하는 경계로 삼기도 한다. 우리는 독특하게 친족을 숫자인 촌수(寸數)로 나눈다. 촌수는 혈연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 기반해 나를 중심으로 관계·거리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고는 삼촌·사촌·외사촌 등 그 촌수가 호칭이 된다.

촌수로 보면 부모와 자녀 사이는 일촌, 형제자매는 이촌, 아버지 형제자매와는 삼촌이다. 그런데 부부 사이는 촌수가 없어 0촌, 무촌이다. 혈연이 아니라 사랑과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가 부부인 것이다. 가장 친밀한 관계지만 또한 언제든 이혼으로 촌수가 없는 남이 된다는 의미다.

 

세계 최대 민간자선단체인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공동운영하고 있는 빌 게이츠·멀린다 게이츠 부부가 3일(현지시간) 이혼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적으로 워낙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부부라 ‘세기적 이혼’으로 불린다. 뜻이 맞는 동지처럼 자선과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 펼쳐온 터라 이혼 소식은 놀랍다. 이들은 재단을 통해 세계의 빈곤·질병 퇴치와 어린이 교육 등에 앞장섰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 백신개발에 1조원 넘게 지원했고, 지금까지 각 분야에 60조원이 넘는 금액을 내놓았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 자선활동을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두 사람의 이혼이 향후 재단 활동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호사가들 사이에선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이 관심사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자산은 지난 2월 기준 약 1370억달러로 추정된다. 세계 4위 갑부다.

 

이들의 이혼 사유는 명확하지 않다. 두 사람은 이혼을 발표하며 “더 이상 부부로서는 성장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성장’이란 단어가 낯설면서도 유독 다가온다. ‘부부는 무촌’인 데서 보듯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다. 남녀가 만나 서로를 인정·배려·사랑하며 존중하는 관계를 통해 부부는 저마다의 삶을 만들어간다. ‘따로 또 같이’ 서로가 성장하는 것이다. 부부의 연은 끊더라도 지금처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빌과 멀린다가 되길 기대한다.


도재기 논설위원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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