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의회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문제가 며칠째 양안(兩岸)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가 지난달 말 ‘대만 방문 여부는 보안상 밝힐 수 없다’고 말하고 아시아행 군용기에 오르기 직전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나서 미국에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고 이후 전투기를 대만해협에 출격시키며 긴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인권 문제에서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펠로시 의장은 중국의 위협에 고개를 숙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문제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온 백악관도 1일(현지시간) “우리의 행동은 위협적이지 않다. 이번 ‘잠재적’ 방문은 전례가 있고, 어떠한 현상도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며 같은 민주당인 펠로시 편에 섰다. 펠로시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방문을 마친 2일 밤늦게 대만 땅에 도착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입법부 수장의 대만 방문은 25년 전에도 있었다. 공화당 소속 강경파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이 1997년 대만을 찾았다. 하지만 깅그리치의 방문은 이번과 달랐다. 깅그리치는 중국을 먼저 방문한 자리에서 대만이 침공받으면 미국은 당연히 방어할 것이라고 공개 경고했다. 장쩌민 국가주석 등 중국 정책결정자들의 반응도 차분했다. 그런 깅그리치도 부정하지 않은 것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래 미국이 견지한 ‘하나의 중국’ 정책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은 대만보다 더 중요한 파트너였기에, 대만의 독립을 원치 않으며 언젠가 양안이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길 바란다는 모호한 원칙을 유지했다.
미국은 지금도 그 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니, 중국이 현상(現狀)을 변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그사이 중국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영향력이 커졌다. 국제정치에서 현상 유지를 바라는 기존 강대국과 현상 변경을 바라는 새 강대국의 관계가 순조로울 수만은 없다. 대만해협은 지금 이 순간 현상 유지 세력과 현상 변경 세력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곳이다. 25년 전과 다를 게 없다는 미국과,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중국 간 입장 차이는 결국 마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 ‘마찰’이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중 정책결정자들이 충분히 현명하기만 바랄 뿐이다.
손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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