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예타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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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예타의 정치학

by 경향글로벌칼럼 2021. 2. 22.

더불어민주당 박인영(왼쪽 네번째 부터), 김영춘, 변성완 부산시장 경선후보 등이 지난 19일 국회 본관 앞에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1966년 11월9일 경북 김천에서는 김천~삼천포 간 ‘김삼선’ 철도기공식이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했으니 지역민들은 곧 철길이 놓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재원 조달 문제로 다음해 중단됐다. ‘비운의 김삼선’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2014년에야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에 들어갔다. 비용 대비 편익(B/C)이 0.72로, 1을 넘지 못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예타가 ‘눈물의 고개’로 비유되는 것은 그만큼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규모 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해 예산의 낭비를 막기 위한 제도인 예타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총사업비 규모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사업은 반드시 예타를 통과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철도나 고속도로 등 지역 민원 사업을 원하는 해당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예타가 늘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로서는 선심성 지역개발 공약이 예타를 통과하도록 하는 게 정치적 능력으로 여겨졌다. 국가 정책사업에 반영하거나 대선의 공약 사항에 끼워넣기, 사전타당성 조사 실시 등 온갖 수단이 동원된다. 심지어 사업성을 부풀리고 건설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등의 편법과 꼼수로 사업을 ‘마사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정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예타 면제’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로,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이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그래놓고 문재인 정부는 김삼선이라고 불리는 남부내륙철도 사업을 2019년 1월 예타 면제 사업에 포함시켰다. 예타 면제를 통한 지역 사업 추진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 셈이다.

 

말 많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지난 19일 국회 국토위를 통과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가덕도신공항 예타 면제가 지나친 특혜라는 여론에 밀리는 듯하던 의원들이 다시 입장을 바꿔 필요시 예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손을 잡은 탓이다. 이제 예타를 무력화시키는 결정적인 방법이 출현했다. 보궐선거 시기에 특별법을 결부시키는 것이다. 예타 제도의 조종이 울렸다.


윤호우 논설위원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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