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 자리는 양면적 특성이 있다. 늘 1인자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다. 묵묵히 뒤를 지키는 병풍 같은 존재다. 하지만 1인자의 뒤에 있으니 비판받을 일이 없다. 힘을 모아 후사를 도모하기에 이만한 자리가 없다. 슈퍼파워 미국 행정부의 2인자, 부통령 자리도 비슷하다. 초대 부통령 존 애덤스는 “부통령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하찮은 자리”라고 자평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78)도 한 정치풍자 프로그램에서 군인들에게 핫도그를 배달하는 게 헌법이 부여한 부통령의 임무라고 농담했다. 하지만 어떤 대통령을 만나느냐에 따라 부통령의 역할은 크게 달라진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딕 체니 부통령은 실세 역할을 했다. 리처드 닉슨 등 14명이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이 된 것을 봐도 무시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미국 부통령은 1804년 수정헌법에 따라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한다. 그 전까지는 대선 2위가 부통령을 맡았다. 부통령은 사망, 하야, 탄핵 등으로 인한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실제 9명의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해리 S 트루먼도 194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부통령은 상원의장도 겸한다. 평소에는 의결권이 없지만 가부가 동석일 때 캐스팅보트를 행사한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은 4번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바이든 전 부통령이 러닝메이트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55)을 선택했다. 해리스 의원은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인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유리천장을 깨며 정치적 입지를 다져왔다. 첫 여성이자 첫 흑인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도 지냈다. 그리고 이제 사상 첫 흑인 여성 부통령 후보이자 첫 아시아계 부통령 후보로 낙점받았다. 민주당 내 강경파로 분류되는 해리스 의원은 ‘중도 성향의 70대 백인 남성’인 바이든 후보의 약점을 보완해줄 카드다. 미국 시민들은 12년 전 젊은 흑인 대통령 후보 버락 오바마와 안정감 있는 백인 부통령 러닝메이트 조 바이든의 흑백 조합에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흑인 여성 2인자의 탄생으로 미국 사회가 통합을 향해 또 한발 전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영환 논설위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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