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후진타오 전 주석(80)이 퇴장하는 모습이었다. 후 전 주석은 지난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당 대회 폐막식 도중 진행요원에 이끌려 회의장을 떠났다. 처음엔 당황한 표정으로 저항하는 듯하다 이내 서류를 챙겨 나섰다. 그러면서 바로 옆자리의 시진핑 주석에게 뭔가 말을 했다. 시 주석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새 당장(黨章) 채택 등의 공개 표결을 앞두고 내·외신 카메라들이 막 입장한 뒤에 벌어진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중계됐다. 중국 내에서는 영상이 삭제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영문 트위터에 후 전 주석이 건강이 좋지 않아 퇴장했다고 밝혔다.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노쇠한 모습으로 공개석상에 등장한 후 전 주석이 건강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당 대회 개막식에서 2시간이나 이어진 시 주석의 업무보고 때 내내 자리를 지킨 것을 감안하면, 폐막식 투표를 마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나빴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후 전 주석이 시 주석의 독주체제 완성에 항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은 연임으로 끝내온 관례를 깨며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하고 반대파들을 지도부에서 밀어냈다. 리커창 국무원 총리 등 후 전 주석 계열 인사들은 모조리 밀려났다. 공산당이 그의 퇴장 장면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당 대회는 치밀하게 준비된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데다 선전·선동에 역점을 두기 때문이다. 우발적인 듯하지만 실제론 의도적으로 연출된 장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이 장면이 매우 상징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후진타오 재임기(2003~2013년) 중국은 상대적으로 개방된 모습이었다. 덩샤오핑 이래 집단지도체제가 작동하며 정책이 어느 한 사람의 목소리대로만 가진 않았다. 인터넷 검열도 지금만큼 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중국이 ‘도광양회’(힘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림) 기치 아래 미국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기에 그랬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는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방향을 틀었다. 후진타오의 퇴장은 당원과 전 세계에 그것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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