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와 국제질서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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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김재중의 워싱턴 리포트

우크라 사태와 국제질서 요동

by 경향글로벌칼럼 2022. 3. 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옛 시대의 종언과 새 시대의 탄생 장면을 목격하는 게 반드시 가슴 벅차는 일은 아닐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자리 잡은 국제질서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신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라는 거창한 평가는 전쟁이라는 날것의 폭력 앞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을 방송 화면과 인터넷을 통해 봐야 하는 고통을 덮지 못한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이 13일째를 넘겼다.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와 군사장비 지원을 하되 병력은 들여보내지 않겠다면서 직접 군사 개입에는 일찌감치 선을 그은 대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에 대가를 물리겠다면서 강력한 제재를 쏟아내고 있다.

고국에서 목숨을 잃거나 이웃 나라로 대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세계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은 뜨겁다. 미디어를 통해 우크라이나 시민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상황에서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는 계속 확산될 것이다.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141개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면서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에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 편에 선 나라는 벨라루스와 시리아, 북한, 에리트레아 등 4개국에 불과했다.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세계의 시선이 어느새 ‘사태 이후’로 향하고 있다고 해서 냉정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 시대로 굳어지는 듯했던 21세기 전반기는 러시아가 과격한 방식으로 도전장을 던지면서 한층 더 경쟁적이고 다극적인 체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을 겨냥해 인도·태평양에 방점을 두었던 미국의 기존 전략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는 소비에트연방 이전의 역사적인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모든 영토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 순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도를 억제하는 데 동참해 달라는 미국의 제안을 뿌리친 중국은 이번 사태가 미·중 전략경쟁, 그리고 양안관계에 던지는 함의를 계산하느라 골몰하고 있다.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앞세운 국제적 연대와 단결을 한층 더 강조할 태세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한국 입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에서 한국·일본 등 전통적인 양자 동맹관계와 더불어 쿼드·오커스 등 집단안보를 염두에 둔 행보를 가속화해 왔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유지를 위한 부담을 분담하라는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공교롭게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한국의 대선 시기와 겹쳤다. 대선에서 누가 최종 선택되든 정식 취임하기 전부터 쉽지 않은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판단에 따른 결과는 무겁다. 한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 동참에 머뭇거리는 동안 미국이 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발동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의 면제국에서 빠졌다가 뒤늦게 포함된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정부도 국민도 진지한 토론과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김재중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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