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위기의 트럼프와 북핵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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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위기의 트럼프와 북핵협상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10. 25.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동료 중 한 명이 그의 재임기간에 어쩌면 내전(civil war)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때는 “설마 그럴 리가?” 그렇게 가볍게 농담조로 넘겨 버렸다. 요즘은 그 설마가 현실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 국내정치의 갈등이 심하다.


알려진 것처럼, 미 민주당 주도의 하원이 지난 9월 말 공식적으로 트럼프에 대한 탄핵 조사를 시작했고, 이에 맞서 트럼프는 자신이 탄핵당하면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하원(House)의 과반수가 넘는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트럼프 탄핵에 찬성을 표시하고 있다. 문제는 상원(Senate)인데, 최소 20명 정도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찬성해야 탄핵이 통과된다. 현재로선 난망한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탄핵당하든, 그렇지 않든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지형은 극심한 갈등과 불안정성이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이런 미국 내 정치갈등은 북핵협상에도 심각하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혹자는 트럼프가 국내정치 위기의 타개를 위해, 또 대선에 본인 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올해 말까지 북핵협상을 타결지으려 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트럼프나 김정은 본인도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 아닐까 싶다. 누가 미래를 정확히 알겠는가. 다만 미국 국내정치에 초점을 맞춰 현 국면을 보자면, 결국은 ‘노딜’로 끝날 공산이 높아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정치 양극화 심화로 북핵 관련 초당적(bipartisan) 협력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90% 이상이 트럼프의 국정수행을 지지하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제 5%도 채 안되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정치 양극화다. 탄핵정국에 접어들자 트럼프 열혈지지층과 열혈반대층이 더욱 뚜렷이 갈리고 있다. 다음 대선을 가를 주요 6개 주에서의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 또한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본격 대선정국으로 접어들면 이 갈등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러니 북한의 입장에서도 트럼프의 탄핵이나 재선 여부와 상관없는 ‘지속 가능한’ 포괄적 합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보장이나 북·미 수교 등은 미 의회의 지지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불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는 트럼프가 이번 탄핵조사를 받게 된 건 미국 대선에 외국정부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입장에선 북한과 일시봉합식(interim deal) 협상결과라도 만들어내고 싶어 할 것이다. 협상이 결렬되고, 만에 하나 내년 대선 국면에서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재개하게 될 경우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설프게 북한의 부분적 핵동결과 일부 경제제재 해제 등을 맞바꾸는 ‘스몰딜(small deal)’을 할 경우,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위기 탈출 및 대선용으로 활용하려 든다는 공격에 직면해 더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트럼프가 모험을 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그가 초당적 지지 없이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보장을 약속해 줄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세 번째는 트럼프가 대북 협상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진행해 온 핵심 추동력은 트럼프의 밀어붙이기식 성향이다. 오바마가 해결하지 못했던 북핵 문제를 자기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유아독존식 성향이 아니고선 설명이 쉽지 않은 대목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가 불확실해질수록 그의 대북한 협상 추동력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정치적 공백을 이용해 종래 한반도 관련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쥐어왔던 군사 및 정보 관련 조직들이 다시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영변만의 부분 핵동결에 적극 반대해 왔다. 물론 섣부른 보상에도 반대다. 이미 영변 이외의 추가 핵시설 및 SLBM 등의 추가 미사일 프로그램 등이 확인된 상황에서 영변만의 부분 핵동결에 동의할 리 만무하다. 부분타결을 하느니 아예 결렬을 선언하고 종래의 핵억지 봉쇄전략으로 나아가는 게 국가안보나 그들 조직의 이익에 더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변화를 택해서 얻을 이득이 불확실하면 언제나 현상유지를 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이들 조직의 생리는 더욱 그렇다.


결국 미 국내정치 상황상, 북핵협상은 결렬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외교나 정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영역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 전망이 보기 좋게 틀리기를 바란다. 다만 희망사항을 투사해 상황을 오판하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냉철함이 더 요구되는 국면이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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