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복잡계 국제정치와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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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복잡계 국제정치와 한반도 평화

by 경향글로벌칼럼 2021. 1. 5.

신축년 새해 국제정치의 화두는 단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질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다. 트럼프식 일방주의가 지고 바이든 신행정부가 ‘규칙에 기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재건해 미국의 주도권을 회복한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뉴턴식 결정주의와 달리 미국의 의지만으로 실현될 수 없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복잡계(complexity system)다.

 

동북아 국제질서만 해도 미국의 대외전략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남북한 등 다양한 국제정치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 기업, 시민단체와 같은 행위자도 군사나 경제 이슈에 영향을 미친다. 어느 국가의 전략도 고정적이지 않고 국내 정치변수나 타국의 전략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우리가 한반도 정세를 말할 때도 결정론적 시각이 아니라 다양한 상호작용을 읽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바이든 신행정부가 맞이하게 될 국제정치의 현실은 엄중하다. 미국이 세계경찰의 역할을 담당하고 공공재를 제공할 능력을 갖지 못한다면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러한 국제질서를 재건한다고 해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에 대해 미국이 수수방관했던 일이 되풀이된다면 동맹의 요구라도 우리 국익을 우선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 신행정부가 추진하는 동맹관계의 복원도 나토(NATO) 재건이 우선인지, 동아시아지역 동맹 재건이 우선인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시진핑 정권은 미 신행정부를 맞아 미국과 정면충돌하기보다는 갈등공간을 줄이고 국제테러, 기후변화, 북핵 문제 등에서 협력공간을 확대해 나가고자 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과의 정면충돌보다 투쟁과 타협을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는 미·중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일본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전략을 내세워 미국을 동아시아에 묶어두고 중국을 견제하는가 싶더니, <외교청서>에서는 처음 썼던 ‘전략’ 표현 대신에 ‘구상’으로, 2020년 판에선 ‘생각(考え)’이 되었다. 10월6일 미·일·호·인 QUAD(4자 안보대화)에서 일본이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고려해 소극적 자세를 보이는 바람에 ‘공동선언’ 채택이 불발되었다. 스가 총리는 첫 외유에서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FOIP를 강조했지만, ‘QUAD의 나토화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중국의 태도도 중요한 변수다. 중국은 타협을 말하면서도 “중국을 건드린 자는 멀리 있어도 반드시 응징한다”는 이른바 ‘늑대 전사(전랑·戰狼)’ 외교를 펼치고 있다. 대미 장기전에 대비해 대러 군사·에너지 협력을 강화하며, 중국 주도의 새로운 지역가치사슬(RVC) 구축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29일 중국공산당 19기 5중전회에서 ‘쌍순환 전략’을 채택한 뒤 RVC에 한국과 일본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은 동북아 질서재편에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

한반도 정세의 최대변수는 북한이다. 지금 평양에선 제8차 당대회 개최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이번 당대회의 핵심의제는 작년 8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예고한 대로 ‘새로운 5개년 경제계획’ 발표다. 5년 전 제7차 당대회에선 호기롭게 ‘경제전략’을 말했지만, 초라한 성적표 때문에 또다시 예전의 ‘경제계획’으로 돌아갈 모양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아예 북·중 국경도 폐쇄해 외부경제의 영향력을 차단하며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제거될 때까지 자폐적 정치안정에 주력할 태세다.

 

미국,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우리의 외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대외정책도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강대국의 대외정책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미국이 우리 정부의 의견을 수용해 한반도정책을 바꾼 사례가 많이 있다. 그런 점에서 미 신행정부의 정책을 분석하는 것 못지않게 한반도 평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중요하다.

 

오는 4월7일 재·보궐선거를 시작으로 가을에 여당과 야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치러지는 등 중반기 이후 내년 3월 대선 때까지 선거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철이 되면 편가르기가 쉬운 미·중관계 및 북한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강대국들은 언제나 국내 분열을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챙겨가곤 해왔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복잡계를 이루고 있어 단순한 이념이나 진영의 잣대로 보면 정세를 오판하기 쉽다. 어느 때보다도 당파적 이익을 넘어 국익을 토대로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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