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를 몰아내고자 하는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내전 26개월 동안 쌍방의 무차별 공격으로 무려 7만여명이 죽고 100만명 이상의 난민이 생겨났다. 비잔틴 제국의 동방수도였고, 이슬람 역사를 시작한 우마이야 왕국의 도읍지였으며 가장 아랍적인 정서와 다문화적 공존의 정신이 온전히 살아있는 인류유산의 소중한 무대가 이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 참혹한 전쟁을 끝낼 방도가 없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은 모두 자기 잇속만을 챙기고 국제기구도 무용지물이다. 참혹한 고통을 분담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외치는 평화와 인권의 구호도 이제는 식상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이러한 암담한 현실에서도 묵묵히 시리아 사태를 전해주는 단체는 놀랍게도 라미 압둘라라는 시리아 운동가 혼자 운영하는 시리아인권관측소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망자 숫자나 시리아 내부 상황도 그가 전해주는 정보에 의존한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알 카에다와 같은 반미 급진세력들이 혼란기를 틈타 시리아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막아내는 일이다.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에는 거의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은 아사드 정권의 권력유지를 바란다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미국이 시리아에 ‘악의 축’ 운운하며 뿌려놓았던 반미감정 때문에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에 더욱 강력한 반미성향의 급진 이슬람 정치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 해결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이웃의 이란과 터키도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올 6월로 예정된 대선 전까지 현 상황을 불리하게 할 어떤 역할도 하지 않을 것이다. 20여명이 난립하고 있는 대선 후보 누구도 아사드 정권을 압박하고 지원을 중단해 그를 끌어내릴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음 역할은 터키다. 일찌감치 시리아 반군 지지를 선언한 터라, 운신의 폭이 넓지 않고 터키 국경으로 몰려든 수만명의 시리아 난민 처리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21일 춘분, 많은 이슬람 국가의 신년 첫날인 노루즈 축제날에 깜짝 놀랄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터키 쿠르드노동당(PKK)의 지도자인 압둘라 외잘란이 30년간의 무력투쟁을 포기하고 터키 정부와의 화해를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터키 군경 4만여명을 죽인 적장임에도 터키 정부는 즉각 화답했고, 그동안 PKK를 테러조직으로 단죄해 왔던 미국과 유럽연합도 환영 메시지를 보냈다. PKK의 폭력 중지 선언에 가장 긍정적으로 반응한 또 하나의 집단은 아사드 정권 붕괴에 앞장서던 시리아의 쿠르드 정치조직이었다.
그동안 시리아 쿠르드의 최대 정치조직인 민주동맹당(PYD)은 PKK와의 동족 연대 때문에 터키가 주도하는 시리아 반군 연대에 소극적이었고, 터키에 적대적 노선을 취했다. 이제 시리아 쿠르드가 적극 터키 편에 서서 아사드 정권 타도에 앞장선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시리아 쿠르드 PYD 총재인 살리히 무슬림은 터키와 PKK 사이의 화해를 높이 평가하면서 터키에 대한 적대적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의사를 밝혔고, 이에 따라 반아사드 연합은 커다란 원군을 얻게 되는 셈이다.
시리아의 난민들이 터키로 망명하기 전 임시 시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경향DB)
물론 좀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내전의 두 당사자에게 미국과 러시아를 대신해 각각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가 터키와 이란인데, 터키에서 먼저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이다. 시리아의 안정은 알 카에다 같은 혼란으로 먹고사는 기회주의자 테러집단의 생성을 막는 첩경이다. 무엇보다 아랍 민주화 시위 이후 급진적 이슬람 정치세력들이 참패하고 서구를 끌어안고 자신의 자존과 종교적 숭고함을 지키려는 융합적 이슬람 정권이 집권 대세를 이루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시리아 안정을 위해 국제사회가 발벗고 나설 때다.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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