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일본군 위안부 문제, 거꾸로 가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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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특별기고]일본군 위안부 문제, 거꾸로 가는 일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4. 29.

미국의 대문호 윌리엄 포크너는 “과거는 죽지 않으며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 태평양전쟁 시절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들은 이 말이 진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유럽인들은 전쟁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공정하게 다루고 앞으로 전진한 반면, 아시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유령이 여전히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현대의 복잡한 문제들과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과거는 언제나 방해물일 뿐이다.


필자는 2007년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 지구환경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인 첫 청문회를 개최했다. 미 의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의회는 한번도 청문회를 개최한 적이 없다. 필자는 2007년 위원장이 된 이후 첫 조치로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들로부터 그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듣는 청문회를 열었다. 2명의 한국 희생자와 1명의 네덜란드 희생자가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특히 청문회에는 이례적으로 당시 한국 국회의원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옵서버로 참석해 자리를 빛내줬다. 


그해 말 필자는 동료인 마이클 혼다 하원의원이 발의한 하원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기 위해 혼다 의원과 함께 노력했다. 미주 한인 유권자 단체인 시민참여센터와 이 단체 김동석 이사가 앞장서 이 결의안이 하원에서 지지받을 수 있도록 의원들을 설득했다. 이 위안부 결의안은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대전 종전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제도를 식민지화하거나 전시에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이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노예로 만든 사실을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역사적인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야스쿠니 참배 규탄 발언 듣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경향DB)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요구는 슬프게도 실현되지 않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독일이 과거의 비극적 역사를 뒤로하고 다른 유럽의 파트너 국가들과 미래를 위해 전진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화해와 참회를 거부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자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일본에서는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을 시인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를 인정하지 않거나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종전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를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시 무라야마 총리는 일본의 군사전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에게 엄청난 손해와 고통을 준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유감을 표시했다. 


최근 일본에서 새롭게 일고 있는 역사 수정 요구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로 상징되는 역사적 화해 시도를 훼손하고 있다. 제2차 대전 당시 아·태 지역에서 있었던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역사 진전을 위한 일본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지금까지 이뤄온 참회의 수준을 퇴보시키려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필자는 최근 혼다 의원, 스티브 이스라엘 의원 등과 함께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만약 고노 담화를 수정한다면 이는 미·일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며, 아시아 이웃국가들을 상대로 불필요한 긴장과 도발을 시작하는 행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단순한 숫자놀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특히 피해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경향을 드러낸다. 역사적 사실을 수정하려는 일본인들은 일본군 위안부가 20만명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실제로는 5만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왔다. 일본군의 난징대학살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편다. 이들은 난징대학살 때 30만명의 중국인이 학살됐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는 ‘불과 10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역사학계에서 이 같은 숫자를 둘러싸고 벌이는 논쟁은 근본적인 요점을 놓치고 있다. 숫자는 어느 특정한 선을 넘어선 이후에는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로 전락한 젊은 여성들이 5만명이냐, 그 이상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말할 수 없는 공포에 예속당한 피해자가 단 한 명이라 하더라도 이는 그 자체로 반인륜적 범죄다. 숫자 논쟁은 ‘진실하고 완전한 사과’라는 실체적 이슈를 피해 가려는 얄팍한 연막작전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서울 근교의 ‘나눔의 집’을 수차례 방문해 그곳에서 거의 70년 전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끔찍한 만행에 고통을 받은 심리적 흉터를 지금까지 감내하면서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났다. 포크너가 뭐라고 말했든 이제는 지나간 과거를 묻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피해자들에게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거짓 없는 사과를 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그것이 인간된 도리에 맞는 행동이다.



에니 팔레오마베가 |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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