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빙빙의 실종과 중국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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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판빙빙의 실종과 중국의 침묵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9. 17.

2002년 7월25일, 중국 관영언론 신화통신은 인기 여배우 류샤오칭(劉曉慶·63)이 탈세 혐의로 당국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당일 CCTV도 저녁 9시 뉴스에서 같은 소식을 전했다. 영화, TV드라마 주인공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배우의 체포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관영언론이 발표하고 나서야 그동안 침묵하던 중국 매체들도 류샤오칭의 탈세 소식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류샤오칭이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기 시작한 것은 체포 3개월여 전인 4월부터였다. 류샤오칭의 매제이자 류샤오칭이 운영하던 연예기획사 대표가 구속됐고, 5월에는 베이징시 지방세무국(국세청)이 류샤오칭 회사 거래은행의 예금계좌 196만위안(약 3억2000만원)을 압류했다. 이즈음부터 류샤오칭의 탈세, 구속, 정치인 연관설까지 온갖 루머가 떠돌았다. 그러나 3개월간 언론도, 중국 당국도, 류샤오칭 본인도 침묵했다. 류샤오칭은 이후 2003년 8월 보석으로 풀려날 때까지 422일간 수감 생활을 했다. 다른 수감자 3명과 5㎡의 감방에서 지냈다. 중국의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를 연기했던 류샤오칭의 몰락은 그해 가장 큰 뉴스였다.

 

중국 유명 여배우 판빙빙이 지난 6월2일 이후 3개월이 넘도록 정확한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진 판빙빙 웨이보

 

류샤오칭 사건이 다시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건 최근 판빙빙(范氷氷) ‘실종’ 즈음 부터다. 할리우드에도 진출한 중국 대표 여배우 판빙빙은 지난 6월2일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에 티베트를 방문한다는 글을 남긴 후 어떤 근황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CCTV 유명 사회자 추이융위안(崔永元)이 판빙빙이 이면계약을 통해 거액의 출연료를 받고 탈세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탈세로 체포됐던 류샤오칭 사건과도 겹친다. 판빙빙이 출연한 영화 개봉이 미뤄지고, 모델인 광고에서도 그녀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감금설, 미국 망명설, 최고위층 연관설 등 미확인 소문이 쏟아진다. 한 대만 매체는 “판빙빙이 감금 중이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 주요 매체들이 판빙빙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동안 1인 매체 등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전하면서 소문이 진실인 양 번지고 있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인기스타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잠적했을 가능성은 적다.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어 신변 자유에 제한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언론이 침묵하는 사이 오히려 외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4일 중국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로이터통신 기자가 판빙빙 실종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물었다. 겅솽 대변인은 “그게 외교 문제냐”고 되물은 후 대답하지 않았다. 판빙빙 실종은 외교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 합법적 조사라면 사실을 밝히면 될 일이지만 중국 당국은 관련한 어떤 발표도 하지 않는다. 판빙빙이 세무조사를 통해 탈세한 사실이 확인됐다면 추징금을 납부하면 된다. 중국은 ‘의법치국(依法治國)’을 전면 추진하겠다며 2035년까지 법치국가, 법치정부, 법치사회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기밀도 아닌 사안에 대한 비밀수사, 그에 대한 언론통제는 법치국가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장은 15일 웨이보에 “판빙빙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의 사무실과 관련 부처가 협조해 대중에 단계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 편집장은 “판빙빙이 거액을 탈세했는지 여부는 법으로 판단하면 될 일”이라면서 “판빙빙이라는 인기스타의 실종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 역시 언론의 역할은 언급하지 않았다. 책임을 전가하며 침묵하는 사이에 소문만 더 기승을 부린다. 16일은 판빙빙의 37번째 생일이었다. 팬들은 그녀가 없는 웨이보에 생일 축하 글은 올리며 판빙빙의 소식이 전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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