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인·태 전략 공개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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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한국판 인·태 전략 공개에 부쳐

by 경향글로벌칼럼 2022. 11. 16.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자유·평화·번영에 기반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한국판 인·태 전략의 구체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굳이 보고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윤 대통령의 언급이 있고 나서 이틀 뒤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 덕분이다.

대북 확장억제 강화, 인·태 수역에서 불법 행위 공동 대응, 경제안보 협력까지 망라한 이 성명은 미국이 3국 협력을 통해 최우선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중국 견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한·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격상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가 이 성명의 틀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한국 나름의 독자적인 지역 전략을 수립, 공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국제 무대에서 높아지는 한국의 위상을 감안하면 다소 늦은 감도 있다. 유럽 국가들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인·태 지역에 대한 자체 전략을 내놓은 지 오래다.

하지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직접 ‘미국과 보폭을 맞추는 측면도, 아닌 측면도 있다’고 밝힌 한국판 인·태 전략 앞에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 외에도 넘어야 할 산이 여럿 있다. 우리의 인·태 전략을 주시하는 강대국은 미국과 중국만이 아니다. 일본도 있다. 일본은 지역 구상으로서의 인도·태평양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개념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미국도 이를 인정하는 바다. 인·태 구상의 ‘저작권’을 가진 일본이 미국과 아세안 등에 대해 지닌 발언권은 상당하다. 최근 만난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지금처럼 한·일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은 한국의 움직임을 경계 또는 견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몇달 전까지 한국으로부터 “사람·평화·번영에 기반한 신남방정책 파트너”로 호명된 아세안의 반응도 관건이다. 미·중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자율성 확보를 중시하는 아세안의 호응을 이끌어내려면 한국 새 정부가 ‘간판 바꿔달기’ 혹은 ‘미국 일변도’의 인·태 전략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를 줘야 한다. 외교 전략이 지지를 얻으려면 국내적으로도 충분한 토론을 거쳐야 한다. 정부가 미국과 대부분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그런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의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지만, 두 행정부의 국가안보 전략에는 사실 공통점이 더 많다. 방법론은 다소 다르겠지만,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된 중국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미국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식이다. 미 정부 당국자는 “동맹 경시 등 전임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지 안보 관련 전략 문서상 두 행정부 사이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판 인·태 전략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수명이 5년짜리에 불과한 외교안보 전략은 국가적 불행이자, 대외적으로도 민망한 일이다. 정권에 따라 갈지자를 그린 대북정책의 경로를 답습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연재 | 특파원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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