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서의동 특파원의 도쿄리포트'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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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서의동 특파원의 도쿄리포트27

[특파원칼럼]일본의 저열한 위안부 인식 서의동 도쿄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일본 정부는 1945년 8월15일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지 3일 만에 미군을 상대로 하는 위안소 설치에 착수했다. 일본의 작가 겸 역사가인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가 쓴 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일본 내 치안 최고책임자인 내무성 경비국장이 8월18일 점령군을 위한 ‘서비스 걸’을 모집하라는 행정명령을 각 지방에 내려보냈다. 당시 재무관료로 후일 총리가 되는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가 “(위안시설 조성에) 얼마나 필요한가”라고 묻자, 특수위안시설협회 간부가 “1억엔 정도”라고 답변했다. 이케다는 “1억엔으로 (나머지 여성들의) 순결이 지켜진다면 비싼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라를 이끄는 핵심관료들이 점령군의 진주에 대비해 위안부.. 2012. 10. 10.
[특파원칼럼]노다 총리의 오판 서의동 도쿄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오판했다. 지난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 것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다. 후진타오가 경고를 한 다음날 노다 총리는 각료회의를 열어 센카쿠 열도 3개 섬의 국유화를 결정했다. 외무성의 일부 간부들이 “국유화는 조금 기다렸다 하자”며 충고했지만 노다 총리는 듣지 않았다. 국가주석의 체면이 구겨진 중국은 무섭게 화를 내고 있고,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일본은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노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의 외교라인은 중국의 본심을 읽는 데 실패했다. 이토추(伊藤忠)상사 회장을 지낸 친중파 니와 우이치로(丹.. 2012. 9. 19.
[특파원칼럼]재일 한인사회에 몰아친 ‘후폭풍’ 서의동 도쿄 특파원 “마치 세입자가 집주인 눈치를 보는 기분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꽤 심각했다. 일본에 온 지 30년이 다 돼 가는 이 한국인 사업가는 한·일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일본 고객들을 상대할 때 괜한 위축감이 든다고 했다. “한 일본인은 내게 ‘테러를 조심하라’고 합디다. 물론 친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 좋게 생각하려 해도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사회 분위기에 민감한 일본인들이 앞으로 대놓고 한류 콘서트장을 찾을 수 있겠어요? 신오쿠보의 코리안타운에서 우익들이 시위를 벌이면서 한류팬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걸 보면 한류붐이 빠르게 식을까 걱정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발언이 촉발한 한·일 갈등이 일본의 한인.. 2012. 8. 29.
[특파원칼럼]이지메 피해자가 전학가는 일본 서의동 도쿄 특파원 그의 팔뚝에는 담배로 지진 20여개의 벌건 흉터가 남아있었다. 줄을 맞춘 듯 가지런한 흉터자국이 보는 이들을 더 섬뜩하게 한다. 일본 센다이(仙台)에 사는 이 고교생이 동급생들로부터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 부모가 학교를 찾아갔으나 학교 측은 되레 학생의 퇴학을 권했다. “흉터를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줘 심적 동요를 유발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왜 피해자가 학교를 그만둬야 하느냐”며 학부모가 고성을 지르는 장면이 얼마 전 일본 방송의 뉴스화면에 비쳤다. 도쿄의 중학교 2년생은 지난해 5월부터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오다 늑골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결국 지난 3월 학교를 옮겨야 했다. 이지메 문제는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심각하지만 일본의 대처방식은 꽤 독.. 2012. 8. 8.
[특파원칼럼] 일본 시민들의 ‘작은 나라론’ 서의동 도쿄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일본이 작은 나라가 되는 것이 그리 부끄러운 일인가요.” 지난 16일 도쿄시내 요요기공원. 폭염에도 불구하고 17만명이 운집한 ‘사요나라 원전’ 집회에서 연사들의 말을 반쯤 흘려듣던 도중 여류 논픽션작가 사와치 히사에(澤地久枝)의 말이 귀에 생생하게 꽂혔다. 사와치는 81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작은 국토에 걸맞은, (대신) 일본에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작은 나라’는 매우 함축적인 말이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본질을 짚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불황에 저출산·고령화로 경제활력이 줄어들면서 일본은 세계 2위이던 국내총생산(GDP)을 2010년 중국에 추월당한 데 이어 지난.. 2012. 7. 18.
[특파원칼럼]진보의 ‘갈라파고스화’ 서의동 도쿄 특파원 일본 나가노(長野)현 기타사쿠(北佐久)군에 아사마(淺間)라는 이름의 산장이 있다. 일본 수도권의 휴양지인 가루이자와(輕井澤)에서 멀지 않은 이 산장에서 40년 전 벌어진 열흘간의 농성사건은 일본의 혁신운동의 운명을 바꿔놨다. 1972년 2월19일 혁신운동 조직의 한 분파인 렌고세키군(連合赤軍) 조직원 5명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산장에 잠입했다. 이들은 관리인의 아내를 인질로 잡은 채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경찰 2명과 민간인 1명이 죽고 수십명이 중경상을 입은 이 사건의 마지막 날인 2월28일에는 경찰이 중장비를 동원해 건물을 부수고 들어가 진압하는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돼 89.7%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열흘간의 총격전보다 일본 국민을 더 전율케 한 것은 ‘내부공산주의화의.. 2012. 5. 16.
[특파원칼럼]더 작아진 일본 외교 서의동 도쿄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야 워낙 유명한 극우 포퓰리스트여서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이는 일본 안에서도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그가 최근 미국 워싱턴 강연회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어온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도쿄시민이 낸 세금으로 사들이겠다”며 오랜만에 ‘한방’ 날렸다. 일본 민주당 정부에 트라우마가 있는 센카쿠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를 비롯해 각료들이 “그렇다면 정부가 매입하겠다”며 뒷수습에 나섰다. 외교 파장도 커져 아들인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信晃) 자민당 간사장은 중국 방문을 취소했다. 그가 방중 때 강연하기로 한 상하이대학이 “부친의 발언 파문.. 2012. 4. 25.
[특파원 칼럼] 일본 청년들이 불행한 이유 서의동 도쿄 특파원 올해 93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는 요즘도 언론에 등장해 정국 현안에 대해 왕성하게 발언한다. 신문기자를 거쳐 30여년간 정치평론가로 일해온 82세의 미야케 히사유키(三宅久之)는 올해 들어서야 TV토론 프로그램에서 은퇴했다. 79세의 극우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는 도중에 그만두지 않는 한 81세까지 지사직을 수행하게 된다. 도쿄 도심 오피스가로 향하는 아침 전철에서는 정장을 빼입은 세련된 노신사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다. 정년이 65세까지 늘어난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들르는 동네 편의점에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 점장이 건강한 목소리로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외치며 분위기를 돋운다. 기업에선 후배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2012. 4. 4.
일본 정치의 ‘료마 마케팅’ 서의동 도쿄 특파원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다. 에도(江戶)시대 말기 하급무사였던 료마는 영지를 떠나 지사(志士)로 활동하면서 강력한 추진력으로 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인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성립에 기여했다. 교토(京都)에서 자객의 칼에 맞아 요절한 료마는 한동안 잊혀졌다가 고향 고치(高知)현의 한 신문이 10여년 뒤 그의 평전을 연재하면서 알려졌다. 러일전쟁 직전엔 메이지 왕후의 꿈속에 료마가 나타나 “제가 해군들을 수호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국에 회자됐고, 일본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한 이후 료마는 영웅으로 추앙됐다. 이후 최근까지 료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만 20편이 제작됐고, 2010년 NHK가 방영한 까지 TV 드라마도 8차례 만.. 2012.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