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외주의’의 종언과 그 이후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김재중의 워싱턴 리포트

‘미국 예외주의’의 종언과 그 이후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5. 19.

미국 뉴욕의 시민들이 18일(현지시간) 브루클린의 도미노 공원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한 물리적 거리를 두기를 지키라는 의미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려진 원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욕_AP연합뉴스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9만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 사망자의 약 28%에 해당하는 규모이자 두번째로 사망자가 많이 나온 영국보다 2.6배 더 많다. 하루에 발생하는 사망자가 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700~800명대여서 조만간 10만명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가 브리핑에서 자주 인용했던 미국 워싱턴대학교 보건계량분석평가연구소(IHME) 추계 모델은 8월 4일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14만3357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대부분의 주들이 봉쇄했던 경제 활동을 서서히 풀면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받은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겪은 코로나19 사태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공산이 크다.


미국 언론과 지식인들이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을 논할 때 종종 눈에 띄는 표현이 “‘미국 예외주의’가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다. 진보 성향 잡지 ‘아메리칸 퍼스펙티브’의 편집인인 로버트 쿠트너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미국 예외주의가 어떤 것을 뜻하든 이제 끝났다. 아마도 영원히”라고 적었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1830년대에 당시로선 신생국이었던 미국의 정치·사회·문화를 분석하면서 ‘예외적인 나라’라고 언급한 이래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 내·외부의 관찰자들이 사용해온 개념이다. 미국은 봉건제를 경험하지 않고, 귀족 전통 없이 민주주의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유럽과 비교해 예외적이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신으로부터 특유한 은총과 덕목을 받으며 탄생했다는 신념이 강하다. 정치학자 세이무어 마틴 립셋은 미국에서 주목할만한 사회주의 운동이 부재했다는 사실이 미국 예외주의의 한 측면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이 광활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태평양과 대서양, 그리고 우방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와 인접해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외침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이 믿음은 1941년 진주만 공습과 2001년 9·11테러를 거치면서 생채기가 났지만 미국이 심한 자연재해나 기근, 역병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것도 사실이다.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지위 역시 미국인들로 하여금 어느 나라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을 강화시켰다. 코로나19 발병 초기 미국이 세계보건기구(WHO)가 배포한 진단 키트를 거부하고 자체 개발한 부실 진단 키트를 썼다가 사태를 키운 건 이런 믿음이 낳은 참사였다.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이 예외적으로 안전하다는 믿음을 깨트렸다. 감염병 대응 측면에서 미국은 그들이 종종 경멸과 비하를 담아 부르는 ‘제3세계’에 비해 별반 나을 게 없었다.


미국 예외주의 종언 이후 미국은 어떤 길로 나갈까? 미국이 특유의 역동성과 진취성을 발휘해 자기 혁신, 그리고 외부와의 협력 강화에 나설 경우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일례로 미국 주요 언론과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에서도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성공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은 이런 기대를 낳는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반성이나 혁신에서 거리가 멀어 보인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미국인들의 선택을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