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전쟁, 쿠오모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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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김재중의 워싱턴 리포트

트럼프의 전쟁, 쿠오모의 전쟁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4. 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의료 물자 공급업체 대표들과 만나고 있다. 워싱턴 _ UPI연합뉴스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나라가 되면서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마트나 거리에서 만나는 미국인들의 표정에선 불안감이 흐른다. 마스크는 병자나 쓰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마스크 쓰기를 거부해온 그들이지만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착용한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뒤에 숨어 있는 대량 실업의 공포도 그들을 짓누르고 있다.


시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책임진 정치 지도자들이야말로 진짜 전쟁 중이다. 자신을 ‘전시 대통령’으로 규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물론이고 미국 내 감염자의 40%가 나오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최근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아직 재난의 초입에 불과하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현재의 재난에 대처하고 앞으로 닥칠 더 큰 위기에 대비하면서도 시민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연방정부 대통령과 주지사 사이의 권한과 정치적 무게감의 차이는 크다. 하지만 두 사람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각자 일일 언론 브리핑을 하면서 드러난 스타일의 차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특징은 순간의 감각에 의존해 판단을 내리되 자신의 판단이 잘못으로 드러나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성격은 이번 위기에도 드러났다. 그는 3월 초까지만 해도 코로나19의 위험성을 평가절하하는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사태가 심각성을 드러내자 돌변했다. 유럽으로부터의 입국 금지를 전격 발표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의회에서 이끌어냈다. 자신이 내린 ‘물리적 거리 두기’ 지침을 조기에 완화하고픈 열망을 불태웠으나 사망자가 10만~20만명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문가 경고 앞에 고집을 꺾었다.


그가 놀라운 유연성을 발휘해 태도를 바꾼 것은 미국인으로선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미덕은 거기까지다. 그는 초기의 낙관적 전망 때문에 사태 악화를 키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때그때의 판단은 옳았고, 200만명이 죽을 수 있다는 전망에 비하면 10만명이 죽는다면 아주 잘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자신이 100점 만점의 대응을 하고 있다면서 왜곡된 수치를 동원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왼쪽)가 30일(현지시간) 뉴욕 항구에 도착한 미 해군 병원선 ‘컴포트호’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욕_AP연합뉴스


쿠오모 주지사는 솔직하다. 그는 매일 심각해지는 상황과 함께 부족한 병상 및 의료장비 현황을 공개한다. 나름의 대책을 설명하지만 완벽하지 않다는 점도 인정한다. 주 전역으로 물리적 거리 두기를 확대한다고 발표하면서 “누군가가 불행하고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불평하길 원한다면 나를 비난하라”며 “이 결정을 책임질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의 브리핑 스타일을 “일부는 브리핑이고, 일부는 설교이며, 일부는 영감 어린 대화”라고 평가했다.


재난의 순간에 맡은 책임을 다하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쿠오모 주지사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율은 집권 이후 최고치를 달리고 있으며, 쿠오모 주지사의 일일 브리핑은 뉴욕주뿐 아니라 다른 주에서도 애청자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 스타일이 극명하게 갈리는 두 지도자가 동시에 인기를 끄는 현상은 양극화가 심화된 미국 정치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워싱턴 | 김재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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