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내전의 끝, 평화라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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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내전의 끝, 평화라는 희망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9. 20.

52년 동안 지속된 콜롬비아 내전이 마침내 끝났다. 지난 8월 말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9월26일 공식 서명식과 10월2일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국민투표는 사실상 상징적인 절차로서 “갈등 종식과 지속적인 평화 수립을 위한 최종 합의를 지지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최소한 유권자의 13%가 찬성하면, 사망자 26만명, 실종자 4만5000명, 이재민 수백만명을 낳은 라틴아메리카 최장의 내전이 마감될 것이다.

 

6000~7000명으로 추산되는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의 게릴라 대원들은 별도의 추인 과정을 밟아 무기를 내려놓고 합법적인 정치 세력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1940년대 말부터 10여년의 ‘대폭력’ 시대와 잔혹한 탄압의 세월을 겪은 뒤 1964년에 이 조직을 창설한 이들은 주로 소농과 농업노동자 출신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는 일부 도시 출신 지식인 외에 농촌의 유색인과 혼혈인이 대다수를 구성한 이 조직은 대지주들의 토지 독점과 심각한 불평등에 항거했다. 쿠바 혁명에 매료된 조직원들이 중부 톨리마의 마르케탈리아에 농업공동체를 세우고 더 많은 토지에 대해 권리를 요구하면서 이런 활동은 지주층과 정부에 큰 위협으로 비쳤고 ‘마르케탈리아 공화국’으로 알려진 공동체는 정부군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주목받지 못한 초창기를 거쳐 1980~1990년대에 중화기로 무장하고 세력을 확대했으나 마약 거래에 연루되고 인질 납치를 자행하면서 악명 또한 떨치게 되었다. 2002년 무렵 약 2만명의 대원이 밀림 지대와 오지를 포함해 전 국토의 3분의 1을 통제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2005년 정부군의 공세로 거점인 톨리마를 내주고 2008년과 2011년 핵심 지도자들의 잇단 사망으로 조직원과 지원 네트워크가 크게 감소했다.

 

2012년 11월 쿠바의 아바나에서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 간의 평화협상이 공식 개시되었으나 앞서 2년간 비밀 회담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화협정은 적어도 6년 만의 결실이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이를 “전쟁의 고통과 비극을 끝내는 서막”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전임 대통령 알바로 우리베의 두 번째 임기 때 국방장관으로서 무제한적인 반군 진압 작전을 이끌었지만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뒤 기존의 태도를 바꿔 협상을 통한 내전의 종식을 주도했다. 한편 2011년 11월 반군의 최고 지도자가 된 로드리고 ‘티모첸코’ 론도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맞서 싸운 소련군 지휘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원래 이름에 티모첸코를 추가하기까지 했지만,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부모들이 전쟁에서 살해된 자녀들을 땅에 묻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며 치열한 경쟁과 원한은 과거 속에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권 당시 미국의 후원 아래 대대적인 반군 소탕 작전을 펼쳤고 내전 범죄와 마약 거래 처벌을 위한 특별재판소 설치 등을 요구해온 전임 대통령 우리베는 이번 협상을 비판하면서 그것이 처벌 면제의 관행을 강화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평화협정 체결을 정의에 어긋난 것으로 간주하거나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행사할 이들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폭력이 없는 조국을 볼 수 있게 되었기에 평화롭게 죽을 수 있겠다”는 보고타의 한 시민을 비롯해 어려운 싸움에서 이기고 평화라는 희망을 이뤄가게 될 콜롬비아인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의 대표로 협상 과정에 참여한 로드리고 그란다가 말한 대로 “콜롬비아인들은 승리했고 죽음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핵 실험, 사드 배치에 더해 어느새 독자적 ‘핵무장론’마저 난무하는 통에 평화라는 희망이 이토록 왜소해져버리고 생명의 가치가 죽음의 그림자에 압도당하는 듯 보이는 한반도의 상황과 얼마나 대조적인지….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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