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공룡 기업’ 누가 통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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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공룡 기업’ 누가 통제하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9. 12.

최근 세계 IT 산업의 대표주자 애플의 혁신적 세금회피가 국제적 관심사다. 지난달 30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애플에 지난 10여년간 탈루한 법인세 130억유로의 벌금을 아일랜드에 내라고 명령했다. 이 액수는 한화 15조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돈이다. 그런데 초현실적인 상황이 전개 중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애플이 잘못한 것이 없다면서 유럽연합이 명령한 벌금을 받을 이유가 없으며 이 결정에 대해 항소하겠다고 나섰다. 15조원이라면 아일랜드 국가예산의 23%, 국내총생산의 5%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애플 역시 탈세한 적이 없다고 펄쩍 뛰면서 아일랜드 정부와 합의한 대로 납세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은 세계화 시대 공공재의 생산과 비용의 분담이라는 정치경제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유럽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은 유럽 시장 전체에서 이윤을 창출한다. 하지만 유럽을 총괄하는 법인은 세금을 가장 적게 낼 수 있는 국가에 설립하여 절세전략을 편다. 예를 들어 프랑스나 독일의 법인세율은 30~40%인데 아일랜드는 12.5%에 불과하다. 당연히 수많은 다국적 기업은 아일랜드에 회사를 설립하여 세금을 회피해 왔고 아일랜드는 그 덕을 톡톡히 누렸다.

 

유럽연합 집행위가 개입한 이유는 애플이 아일랜드의 낮은 12.5%의 세금조차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플은 아일랜드 정부와 협의, 2003년부터 2014년 사이 소득의 1% 미만의 세금만 냈다. 2014년 애플이 납부한 법인세율은 0.005%에 불과하다! 유럽에서 100만원의 소득을 올린 뒤 아일랜드에 50원을 세금으로 냈다는 뜻이다. 애플이나 아일랜드 정부의 합의였지만 유럽연합 집행위는 이것이 국가보조금에 해당하는 불공정거래라는 판단이다. 앞으로는 유럽 내 법인세율의 조정도 정책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심산이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미래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최첨단 기업이 사실은 세금회피의 선수다. 작년에는 중국에서도 법인세 7100만달러 탈세로 두들겨 맞았다. 애플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피해자라고 큰소리다. 게다가 미국 정부를 동원하여 궁지에서 탈피하려 노력 중이다. 애플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은 30%대의 미국의 높은 법인세를 회피하기 위해 해외에 소득을 쌓아두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이 돈을 미국 국내로 들여오겠다며 미국 정부를 끌어들이는 모습이다. 이에 미국 정부도 애플 편에서 유럽의 결정에 항의하였다.

 

제3자의 입장에서 이번 유럽의 결정은 환영할 만하다. 왜냐하면 애플 사태는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세제 경쟁에서 미국과 유럽의 단순한 다툼이 아니다. 세계시장을 주무르는 공룡 기업들을 누가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작년 유럽의 거대한 폭스바겐의 디젤차 관련 조작과 사기를 파헤쳐 변화를 강요한 것은 독일 정부나 유럽연합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기업뿐 아니라 스포츠 분야에서도 국제축구연맹의 비리를 조사하며 유럽과 스위스에 압력을 가한 것은 미국 사법당국이다. 반대로 IT 분야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다.

 

지난해 폭스바겐 때도 그랬고 이번 애플 사태에도 한국 언론의 초점은 미국과 유럽의 대립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세력 다툼이라는 관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세계 자본주의 공룡에 대한 소비자와 시민의 권익보호라는 측면이다. 최근 다양한 사태가 보여주듯이 공공권력이 자국 자본을 통제하기는 어렵다. 결국 미국의 기업을 유럽연합이 견제하고 유럽의 기업을 미국 정부가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도 소비자 보호의 철학과 공정한 납세의 원칙을 가지고 사건을 판단해야지 ‘미국 대 유럽’이라는 시각만으로 바라본다면 다국적 기업의 파렴치한 행태에 면죄부를 줄 뿐이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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