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가장 강조했던 표현이 ‘잃어버린 10년’이었으며, 이는 선거 과정부터 집권 이후까지 정치적 효과를 톡톡히 봤던 말이었다. 그런데 연속적인 보수정부가 7년을 향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3년이 남았기는 하지만 ‘말아먹은’이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불안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다는 저잣거리의 지혜가 떠올라 기어코 10년을 완성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잃어버리는 행위와 말아먹는 행위는 엄연히 의미가 다르다. 백번 양보해서 이명박 정부의 수사가 맞다 해도 잃어버리는 행위는 말아먹는 행위보다는 의도성과 책임의 측면에서 참작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말아먹는다는 것은 송두리째 망친다는 의미인데, 훨씬 더 적극적인 의도성과 함께 심대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10년간 권력을 잃은 보수기득권 세력은 권력복귀에는 성공했지만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전제는 물론이고, 대내외적으로 실정을 거듭해왔다. 이를 인지한 박근혜 정부는 전임 정부의 실정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공약에 모두 담았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마치 공약 파기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복지, 경제민주화, 개헌 약속까지 차례로 파기했다. 잘한다고 자평하는 외교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 선핵폐기론의 대북강경책을 전환해 보다 유연한 접근을 약속했지만 공수표임이 드러나고 있다. 신뢰 프로세스에 프로세스가 없고, 균형외교에는 균형이 없고, 외교에는 외교부가 없고, 대북정책에는 통일부가 없다. 물론 북한의 핵개발과 도발이 시발점이지만 남한 역시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파기적 행보'를 선보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출처 : 경향DB)
드디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까지 재연기함으로써 공약 파기의 정점을 찍었다. “전환 의지가 확고하니 믿어달라”는 국방부와 “공약 이행보다 국가 안위가 중요하다”는 청와대의 변명은 너무도 궁색하다. 안보 포퓰리즘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냉전적 사고에 함몰된 안보장사꾼이 주도하는 정부의 정책으로 평화담론은 자취를 감췄고, 통일론은 특정 목적을 위해 제한적이고 독점적으로만 사용된다. 국가적 비전을 위한 노력은 없어진 지 오래며, 사적 권력과 지위 유지에만 혈안이 돼 있다.
시기가 아닌 조건에 의한 반환은 사실상 전작권의 무기 연기다. 반환의 3대 조건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다. 이번 결정은 우리보다 미국의 이익이 반영된 결정이다. 그중에서도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가 놓여 있는데 미국의 동북아지역군화로 가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부시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 측면에서 한국에 전작권을 넘기려 했던 것은 방위분담의 성격이 강했지만, 현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통합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의 구축 차원에서 미국이 전작권을 보유하는 측면의 효용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미국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나서 부탁했다는 차원에서 미국으로서는 꽃놀이패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지금 표정관리 중이고, 한국은 대미 레버리지를 잃어버린 채 무기 수입, MD 참여, 그리고 이번 합의에 담겨 있듯이 미군기지 확대 제공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의 함의를 한마디로 안보에 전부를 걸고,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한반도를 맡기고, 이를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천문학적이 되게 만든 행위였다.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목표일 뿐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는 될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분단의 대결구조를 방치 또는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건설하는 것에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남은 3년마저 말아먹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불안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다는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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