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일본 삿포로(札幌)지방재판소 법정에 휠체어를 탄 노인이 들어섰다. 한손에 지팡이를 들고 무릎에는 담요를 덮은 채 방청석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곧이어 진술이 시작됐다. 몸은 힘들어 보였지만 또박또박 이어나가는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예방적 선제공격입니다. (미국은) 그곳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했지만 실제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바로 침략전쟁입니다. 예전에 일본이 했던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를 지지하고 (전쟁에) 가담한 것은 고이즈미입니다. 침략전쟁의 공범자가 된 것 아닙니까.”
미노와 노보루(箕輪登). 우정상, 방위청 정무차관을 역임한 8선 의원 출신인 그는 그해 1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자 ‘파병은 위헌’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자민당 소속으로 한때 일본 방위력 증강을 주도한 ‘매파’ 의원 미노와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의미없는 전쟁의 무모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4년생인 그가 태어나기 전후 20여년간 일본은 전쟁의 회오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더구나 이라크 파병은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무력행사를 포기한다’는 일본 헌법 9조를 명백히 위반하는 일이었다.
올해 각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지난주 경제학상을 끝으로 모두 결정났다.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 국민’이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명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헌법 9조’가 외신에 오르내리면서 보수 우경화 흐름의 대세를 이어가던 일본 사회 안팎에 주의를 환기시켜준 역할을 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에서는 60년 넘게 전쟁의 반성을 토대로 한 평화헌법을 유지해왔다. 1947년 헌법 제정 이후 자민당이 노골적으로 개헌을 추진하려 했던 1950년대 중반을 제외하면 개헌 논의는 비교적 잠잠했던 편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정치권을 중심으로 개헌 움직임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자는 것이다. 개헌을 주장하는 쪽은 일본 헌법이 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의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앞세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아예 “현행 헌법의 전문은 패전국이 승전국에 바친 반성문”이라고까지 했다. 엊그제 한 라디오방송에서는 “현행 헌법은 점령군의 영향 아래에서 원안이 작성됐다.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며 전면 개헌 의욕을 드러냈다. 개헌론자들은 일본인의 긍지를 회복하고 일본이 ‘정상적인’ 국가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개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헌법 조문은 그대로 두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해석을 달리하는 속칭 ‘해석 개헌’이라는 편법을 통해 이들은 개헌이라는 최종 목표에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허용, 무기수출 금지 3원칙 폐기 등 일련의 행태들은 개헌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지난 7월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일본의 평화헌법 무력화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저지하고 동북아 평화를 위한 시국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일본 전후사를 보면 이런 움직임에 저항해 ‘헌법 9조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창하는 목소리들이 면면히 이어져왔다. 1950년대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 총리는 자신의 후임이자 개헌론자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에 개헌 반대로 맞섰다. ‘평화헌법과 결혼했다’고 한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 전 사민당 당수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도쿄대 교수 같은 사람들은 우파들이 헌법 9조를 뜯어고치려 할 때면 전후 군국주의를 비판하며 단호하게 “안된다”고 외쳤다. ‘전쟁에 휘말려서는 안된다’며 평화헌법 지키기에 나서는 시민들의 행동도 확산되고 있다. 반(反)개헌의 양심이 아직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의 소신은 일본의 저력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는 2005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평화헌법하에서 축적돼온 일본 국민의 양식을 신뢰하고 있다. 극우 세력이 일부 있다고 해서 일본이 우경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기소를 놓고 외교부 대변인과 일본 특파원 간에 설전이 있었다. 한 일본 기자가 대변인에게 “대한민국이 인권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자, 대변인은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라고 했고, 이에 그 기자는 “그렇게 믿고 싶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나도 말한다. “일본 국민의 양식을 신뢰한다. 극우 세력이 있다고 일본 전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다.” 힘내라! 헌법 9조.
조홍민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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