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형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硏 교수
12년 전에 자취를 감춘 공룡이 다시 돌아왔다. 공룡은 과거 71년간 집권한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을 말한다. 페냐 니에토 후보는 38%의 지지표로 좌파 후보인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6% 차이로 물리치고 승리자가 됐다. 부정투·개표 시비로 현재 절반가량을 재검표하고 있긴 하지만 결과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다. 2000년에 그렇게 힘들게 밀어낸 제도혁명당을 멕시코 시민들은 어떻게 쉬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당시 제도혁명당은 권위, 부패, 경제적 실패, 선거부정과 동의어였다.
제도혁명당의 귀환은 결국 12년간 집권한 국민행동당의 무능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12년간 경제는 저성장과 위기 속에서 헤맸고, 마피아와의 전쟁에서 거의 6만명의 인구가 살상됐다. 특히 치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으로 집권당 후보는 3위로 처질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온갖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여소야대의 구도 속에서 아무것도 통과시킬 수 없었다.
선거전은 무색무취의 인기 정치인 페냐 니에토의 독주로 시작됐다. 하지만 제도혁명당의 귀환을 막으려는 학생운동이 개입하면서 열기를 더해갔다. “나는 132번”이란 운동이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서 공룡의 귀환을 막고자 했다. 주도층은 중산층 출신의 사립대생들이었다. 이들은 마피아 전쟁에서 살상을 당한 대부분이 청년층이고, 자신들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런 와중에 지난번 선거에서 석패한 로페스 오브라도르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온 것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멕시코 시장 출신으로 매우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민주혁명당은 늘 분파 싸움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2006년 대선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인기가 다소 침체돼 있었다. 이번에는 브라질의 룰라 이미지로 선거전에 나섰지만, “나는 132번”이란 학생운동의 간접적인 지원에도 막판 판세를 뒤집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멕시코 대통령에 당선된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제도혁명당 후보 ㅣ 출처:경향DB
페냐 니에토 당선자는 제도혁명당의 제3세대에 속한다. 자신은 제도혁명당의 어두운 그림자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 “당은 과거의 오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념에 관심이 없고, 실용주의 해결책을 선호하는 정치인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지난 12년간 제도혁명당이 집권했던 몇몇 주를 보면, 후보 자신의 멕시코 주를 포함해서 인권침해가 남달리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집권 이후에도 얼마나 바뀐 모습을 보여줄지 두고 볼 일이다.
물론 과거 화려했던 제도혁명당의 치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에는 대통령, 정당, 의회, 시민사회가 한 수족처럼 움직였다. 대통령은 6년간 수명을 누리는 반신(半神)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3당체제가 안착됐고, 관료들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제도와, 정보공개법을 통해 정치적 부패를 감시할 장치도 마련됐다. 제도혁명당과 대형노조의 관계도 과거와 달리 현저하게 약화됐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제도혁명당이 얼마나 참신하게 바뀌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비관적인 논평자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말한다. 제3세대 출신의 주지사들의 행태는 여전히 봉건영주처럼 움직인다. 페냐 니에토의 마피아와의 전쟁도 여전히 밀어붙이기로 일관할 것이다. 당선자는 콜롬비아 방식을 벤치마킹하여 엘리트형 군경대를 창설하여 해결하겠다고 말했으니, 여전히 피는 계속 흐를 것이다.
지난 12년간 민주화 이행에도 불구하고 민주개혁의 실적은 형편이 없다. 선거관리는 오히려 후퇴했다는 느낌을 준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까지 투·개표 부정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멕시코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도가 2011년 기준으로 40%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투·개표 부정시비를 넘어서 정치체제의 정당성이 상당히 훼손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페냐 니에토 당선자는 제도혁명당이 과거의 오류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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