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빈 라덴 사살 1주년과 지하드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빈 라덴 사살 1주년과 지하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5. 1.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5월2일,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 지 1주년이 된다. 알 카에다 모방 테러의 위협은 여전하지만 그동안 파키스탄에서 구금생활을 하던 빈 라덴의 부인 3명과 자녀 14명이 본국인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감으로써 11년째를 맞는 9·11테러는 이제 정리되는 느낌이다.

빈 라덴의 죽음은 이슬람 세계에서도 커다란 변화의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한 채 폭력적 보복만을 앞세우던 급진 테러정치조직들의 퇴조가 가속화되었다.

사실상 알 카에다의 활동과 위협은 지나치게 과장된 선전선동의 산물이었다. 실체가 불분명한 모든 폭력에 알 카에다를 연계시키면서 미국은 지난 11년간 테러와의 전쟁을 독려해 왔고, 개별 반미 테러조직들은 자신들의 선명성과 존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알 카에다의 그림자를 교묘하게 내세웠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연보 l 출처:경향DB

특히 아랍 민주화 시위가 미국과 결탁한 아랍의 권위주의 독재정권을 타도하는 새로운 추동력으로 등장하자 그나마 급진적 테러 정치세력들은 설 땅을 잃었다. 최근 독재정권 붕괴 이후 아랍에서 실시된 민주적 선거의 결과 이집트, 튀니지, 예멘 등지에서 온건 이슬람 정치세력이 대거 당선되면서 집권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다.

한편 오사마 빈 라덴의 제거로 9·11테러를 둘러싼 정당한 전쟁 담론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전통적으로 이슬람의 정당한 전쟁은 흔히 지하드(성전)로 압축되어 왔다. 이슬람의 가치를 지키고 이슬람의 숭고한 이념을 확산하기 위한 투쟁으로 시작된 지하드는 이교도에 맞서는 모든 전쟁에 무분별하게 남용되거나 원칙없이 적용됨으로써 서구에서는 ‘지하드=테러행위’라는 편견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동시에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도 지하드를 두고 적용원칙, 정의로운 전쟁으로서의 기준, 전쟁 수행자의 태도와 의지 등에 따라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모든 논의의 초점은 다음 코란 구절에 가장 잘 압축되어 있다. “너희에게 전쟁을 걸어오는 적들에 대항하여 신의 길에서 싸우라. 그러나 경계를 넘어서는 아니된다. 신은 침략을 인정하지 않으시도다.”(코란 2:190) 즉 정당한 전쟁이란 철저히 방어적 투쟁이어야 하고, 유일신 신앙을 보호한다는 두 가지 전제가 강조되었다. 그럼에도 알 카에다와 같은 급진 테러조직들은 공격적 지하드조차 방어적 행위로 확대해석하여 이슬람법에 바탕을 둔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많은 무슬림 학자들은 알 카에다의 무차별적 민간인 살상과 자살폭탄테러는 이슬람 율법(샤리아) 해석의 자의적 과장이며 이슬람 정통성을 갖지 못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슬람의 정당한 전쟁 논의는 특히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커다란 전환기를 맞았다. 미국에 의해 정의로운 전쟁으로 포장된 이라크 침공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이나 9·11테러 연계가 완전 허구로 드러나자, 이에 저항하는 새로운 지하드가 봇물을 이루면서 자살폭탄테러라는 저항수단이 일상화되는 파국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이는 방어중심의 정당한 전쟁에 대한 전통적 관점과 이슬람법(샤리아)의 재해석이 크게 위축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빈 라덴 제거 이후 이슬람 세계는 다시 평정심을 찾고 있다. 모든 반미-반이스라엘 무장투쟁을 테러로 규정하는 미국과 서구의 구분과는 달리, 알 카에다의 9·11테러를 용납할 수 없는 반이슬람적 적대행위로 비난하면서도 헤즈볼라,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같은 정치조직들의 투쟁은 국제법적 정통성을 가진 합법적인 정치항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것은 유엔안보리 결의안이나 국제법에 근거해 빼앗긴 영토와 권리를 되찾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으로 보기 때문이다. 미국과 서구의 ‘이슬람=테러리즘’ 담론에는 강하게 반대하면서, 이슬람의 합리적이고 바른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확산되고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