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okc@kyunghyang.com
지난해 12월 <배트맨>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크리스천 베일이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40)을 찾았다. 중국에서 영화를 찍는 과정에 강제 불임 시술과 중절 수술 강요를 폭로하면서 인권 운동을 펼쳐 온 천광청과의 만남을 원했던 것이다. 세계적 배우가 베이징에서 8시간 동안 차를 타고 산둥성에 있는 천광청의 집을 찾았을 때 현지 공안은 접근을 제지하며 그를 거칠게 다뤘다. 소형 카메라를 빼앗는 모습도 고스란히 CNN 카메라에 잡혔다.
수년 전부터 천광청 부부와 딸이 고문과 구타 등 온갖 박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알려졌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중국 내에도 상당부분 전파됐다. 국내외적으로 동정 여론이 확산돼 오던 차에 이번에 가택연금 탈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시각장애 인권 변호사 천광청 탈출 과정 l 출처:경향DB
올해 창당 91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은 놀라운 변신술을 보여주면서 세계에서 최장기간 집권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중국식 사회주의를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도 몰락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달리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광청 사건을 보면서 중국 공산당이 동맥경화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을 받는다.
중국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나 중국도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1가구1자녀 정책의 수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각종 예외조항을 두며 한 자녀 정책을 완화해 왔다. 일부 성(省)은 첫째가 딸이면 둘째 출산을 허용했고, 여성이 만 24세가 넘어 첫아이를 낳으면 30세 이후 둘째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한 곳도 있다. 이런 점에서 산둥성 정부의 천광청에 대한 박해는 중앙정부로서도 답답한 노릇일 게다. 아마 천광청은 다른 나라에서였다면 용감한 시민운동가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산둥성에서 그는 범죄자로 취급받았다. 홍콩의 한 언론인은 산둥성 관리들을 뇌 없는 공무원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중국 지도층에서 현지 관리에 대한 엄벌론이 흘러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도자를 선거로 뽑는 민주국가들과 달리 중국 공산당은 빠른 경제성장을 통한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통해 독점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아 왔다. 반체제 인사에 대한 억압을 대다수 국민들이 용인해 온 것도 국민들이 공산당과 이 같은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보시라이의 충칭 모델이 보여주듯 성장의 부작용을 해소해 달라는 압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제성장은 정체에 부딪히고 정통성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획득하기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은 천광청 사건을 계기로 민의를 수렴할 수 있는 통로가 동맥경화에 걸린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정책비판을 감정적으로 억압할 일은 아니다.
왕조시대처럼 국제 교류가 단절돼 있을 때 한 나라의 주권은 절대적이었다. 백성들을 탄압하건, 민주 정치를 하건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 간섭은 없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고 중국도 수억명의 누리꾼들이 있다. 인권을 탄압하면 반드시 외국에 알려지고 양심상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압력을 가하기 마련이다. 중국은 국제사회가 인권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인권보다 주권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왔다. 아직도 왕조시대의 사고방식을 답습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중국의 눈부신 발전은 2002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덕분이다. 천광청류의 사건이 빈발하는 나라라면 외국인들은 중국이 생산하는 제품의 사용을 꺼릴 수도 있다. 국가 브랜드 실추는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글로벌화에 과감하게 뛰어들었듯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을 존중하는 체제로 하루빨리 들어서야 한다.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칼럼]국제정치 한복판에 선 한·중 FTA (0) | 2012.05.03 |
---|---|
[여적]진짜 노동자 (0) | 2012.05.02 |
[국제칼럼]빈 라덴 사살 1주년과 지하드 (0) | 2012.05.01 |
[아침을 열며]최대 위기 맞은 중국 공산당 (0) | 2012.04.30 |
빈 라덴 사살 1주년과 지하드 (0) | 2012.04.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