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수사 주도와 거대 언론의 여론몰이를 지켜보면서 아르헨티나에서 한때 이목을 끈 ‘두 악마론’이 떠올랐다. ‘두 악마론’은 군부독재가 자행한 국가폭력과 좌파 테러리즘을 등치시키면서 군부독재 지속에 대한 책임의 절반을 좌파 게릴라들에게 돌리는 보수 세력의 견해다. 이는 20세기 아르헨티나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국가폭력의 시기로 기록될 만한 ‘추악한 전쟁’(1976~1983)의 청산 과정에서 되살아났다. 좌파 게릴라 집단의 테러 행위가 ‘아르헨티나반공동맹’과 같은 극우 단체들의 폭력 행사를 부추겼고, 이런 충돌과 혼란은 군부의 정치 개입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권 단체들은 게릴라 요원의 수를 200명 이하로 추산하고 이들이 아르헨티나 사회를 크게 위협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반면 군부는 이들이 3만명에 달했으며 국가안보의 수호를 위해 국가 전복 세력을 철저히 응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역설했다.
‘두 악마론’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 이행기에 군부독재와 인권침해의 책임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지연하거나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민선정부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던 군부의 반발을 의식해 사법적 심판 절차를 서둘러 마무리하거나 사면법을 제정함으로써 가해자들의 집단 면책을 시도했다. 아울러 ‘두 악마론’은 아르헨티나인들의 과거사 정리와 집단기억의 형성에서 ‘추악한 전쟁’ 이전에 발생한 좌우 세력 간의 갈등과 그에 따른 사회적 동요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켰고 좌파 게릴라 집단의 일원이었던 지식인들의 반성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후속 연구에 따르면, 엇비슷한 두 세력 간의 전쟁이 아니라 초기부터 군부의 비대칭적 타격이 있었을 뿐이다. 게릴라 세력의 과오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입각하더라도 실제 벌어진 사건은 대체로 토끼몰이식 진압이었다.
(경향DB)
요즘 한국사회에서 ‘내란음모 세력’에 대해 재현되는 토끼몰이식 공세는 ‘두 악마론’이 아니라 ‘유일한 악마론’쯤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댓글 달기를 통한 국정원의 여론조작과 정치개입 혐의를 비판하고 이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국정 최고책임자에게 근본적인 국정원 개혁의 단행을 주문하는 여론은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의 명예훼손 주장과 국가안보를 뒤흔드는 유일한 악마에 대한 역공만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아예 유일한 악마에 맞선 국정원의 모든 행위를 정당방위라고 주장할 기세다. 게다가 “국정원의 죄가 이석기의 죄보다 더 크다”는 야당 대표의 지적에 맞서서 “이석기의 죄보다 민주당의 죄가 더 크다”고 책망했다는 여당 사무총장의 발언이 보여주듯 유일한 악마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이어질지 모른다.
법치의 회복과 국정원 본연의 직무 확립이라는 중대 과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온데간데없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행위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지 않고 통합진보당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진상 규명을 요구한 유명 사립대학교의 총학생회, 정규 수업에서 ‘자본론’을 강의하는 강사의 ‘자본주의 부정과 반미 사상’을 문제 삼아 국정원에 신고했다는 한 대학생 등도 투철한 신념으로 ‘유일한 악마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양비론을 과감하게 뛰어넘어 새로운 차원의 권력 추종을 선보이는 젊은 세대의 선택을 보노라면, “10년 안에 좌파에 의해 한국사회가 전복될 것”이라는 어느 역사교육과 교수의 떠들썩한 경고는 기우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또다시 ‘유일한 악마론’의 시대에 살게 된 우리에게는 어떻게 역사와 사회 변화에 대한 공정한 이해를 회복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법치의 근간을 파괴하는 권력자들의 자의적 통치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시민들의 공동 책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신중함과 균형 감각이라는 명분 속에 권력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태도를 견지한다면,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정치인들은 매일 싸우기나 하고 다 똑같아” 식의 냉소주의적 관성을 유지한다면 우리 삶의 상식적 기반은 약해질 것이다.
아울러 국민 대다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찍어내기식 배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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