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미국 정부의 일방적 ‘시리아 공격’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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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자메모]미국 정부의 일방적 ‘시리아 공격’ 논리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9. 9.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요즘 연일 대통령부터 국무장관, 국방장관, 비서실장, 국가안보보좌관, 주유엔대사까지 나서 시리아 폭격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워싱턴 정가는 휴가철을 끝내고 9월이 되었음에도 시리아 문제 이외에는 올스톱된 상태다. 오바마가 이 일에 이렇게 전력투구하는 데는 그의 말처럼 화학무기 사용은 넘어서는 안될 선이라고 경고한 것을 보란 듯이 어긴 시리아 정부를 그냥 두면 세계 경찰로서 미국의 신뢰도가 추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임기가 3년 반 남은 오바마 정부의 레임덕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촉구 백악관 앞 시위



그런데 오바마 정부가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동원하는 중요한 논리 중 하나는 시리아를 폭격하지 않을 경우 북한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지난달 말 존 케리 국무장관의 성명 이후 미국 당국자들의 말에서 빠짐없이 나온다.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 군사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미국 국가안보에 직접적 해가 된다’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중간단계가 필요한데, 여기에 북한의 존재는 아주 유용하다. 북한은 시리아를 제외하면 화학무기사용금지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나라들 중 실제 화학무기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나라다. 북한은 화학무기를 갖고 있다고 시인한 적이 없지만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2500t 이상의 화학무기를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북한의 화학무기는 동맹국 한국의 안보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2만8000여명에게 잠재적인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시리아를 응징하지 않으면 북한에도 화학무기를 써도 좋다는 신호를 준다는 게 미국 정부 논리다.


유엔 화학무기조사단 활동


미국 정부가 우여곡절 끝에 국민들을 설득해 시리아를 폭격하면 북한에 ‘좋은 신호’를 주게 될까. 북한은 시리아가 폭격당하는 모습을 보고 화학무기 사용을 자제해야겠다고 자성할까. 오히려 북한이 화학무기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절대 놓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나쁜 신호’를 받게 되리라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미국이 늘 얘기해온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은, 이미 지금도 충분히 어렵지만, 그로써 한 걸음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오바마에게 북핵 문제 해결이 조금 더 어려워지는 것 따위는 안중에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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