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이란에 부는 ‘화해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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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이란에 부는 ‘화해의 바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0. 14.

지난주 이란을 다녀왔다. 최근 3년간 연구하고 있는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을 담은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에 관한 양국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고 왔다. 마침 개천절과 한글날을 전후한 한국주간행사가 테헤란 중심가의 ‘서울공원’에서 열려 한국말하기 대회, 한식축제, 세종학당 개소식, 영화상연 등 푸짐한 공공외교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란 전역에서 한국 사랑의 열기가 전해졌다. 이란 최고의 명문 대학인 이맘 사디크대학에서 한·이란 역사교류에 대한 특강을 하면서 대학생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한국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왜 한국은 이란에 지지를 보내기는커녕 미국과 함께 걸핏하면 이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얼굴이 뜨거웠다.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과도 의견을 주고받으며 그들에게서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 같은 절박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개혁과 변화의 표상인 로하니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그를 통해 이란의 새로운 미래와 희망이 담긴 비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산 로하니 이란대통령 (경향DB)

이란의 새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에 즉각적으로 부응했다. 그는 유엔 연설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34년 만에 15분간 전화통화를 했고,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 사이에도 역사적인 뉴욕 회담이 성사됐다. 이어서 이란과 영국은 지난주 대리대사를 각각 임명하기로 합의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과 444일에 걸친 테헤란의 미 대사관 인질 억류사건으로 최악의 관계를 지속해온 양국 사이에 화해의 물꼬가 터졌다. 이러한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냉혹하고 화해의 결실인 당장의 경제제재 해제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금 협상을 시작하더라도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34년간의 뿌리깊은 적대감정이 쉽게 녹기 어렵고 핵 프로그램 완전 포기라는 미국 매파와 이스라엘의 집요한 로비가 쉽게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 사람들이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의외로 명쾌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엄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핵 주권의 문제까지 강압적으로 포기하라는 방식을 수긍하지 못한다. “군사공격을 포함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다” “악의 축” “테러지원국”이어서 국제적 신뢰를 저버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등, 어떤 국민이라도 모욕으로 느끼게 하고 기본적인 국제 간의 관례조차 지키지 않는 언어의 야만성에 분노하고 있었다. 중동 비핵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기꺼이 핵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모든 관건은 국제법상 허용된 평화용 핵 프로그램 허용 여부와 무기전환 위험이 있는 고농축 우라늄에 대한 투명하고도 완전한 국제사회의 검증을 어떻게 절충하고 충족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란 지도부는 평화용 핵 프로그램을 양보할 수 없는 주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경제제재 철회의 전제조건으로 완전하고도 투명한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종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그것은 핵무기 보유국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에는 힘의 우위구도를 깨는 상상하기도 싫은 재앙이기 때문이다.

일단 협상 의제는 지난 6월의 알마티 라운드에서 유럽연합이 이란에 요구한 조건이 기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요구 조건은 핵무기 전환 가능성이 있는 20% 우라늄 농축의 유예, 의료용 목적 이외의 20% 농축 우라늄 비축분의 투명한 해외 이전,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강화 수용, 포르도에 있는 지하 농축시설의 6개월 가동 중단이다. 이란이 이에 응한다면 미국과 유럽연합 차원에서 제재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완화 범위도 금과 희귀금속, 석유화학제품의 거래 허용, 미국의 민간 항공기 부품 공급 보장 등이며 유엔이나 유럽연합의 추가 제재 금지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미 이란은 이 제의를 거부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주부터 제네바에서 열릴 5+1 회의에서는 보다 진전된 협상 패키지가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 때문에 중동 전체의 비핵화 실현이 어려운 현실에서 핵 주권으로서 평화용 핵 프로그램을 인정하되, 투명한 국제기구의 사찰 수용으로 핵무기 전환을 철저히 감시한다는 조건으로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가장 원칙적인 접근이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 될 것이다.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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