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축구 제전에 환호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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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축구 제전에 환호하는 까닭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6. 22.

전 세계인의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축구 제전이 브라질에서 개막되었다. 축구는 남아시아, 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세계 전역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꼽힌다. 영국인 저술가 데이비드 골드블랫의 추산에 따르면, 2006년 당시 전 세계 축구장의 흰 선을 모아 잇는다면 지구를 수백 바퀴 넘게 돌 수 있는 2500만㎞에 이르렀다.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 퇴장 사건으로 화젯거리가 된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의 결승전은 세계인의 절반인 약 30억명이 시청했다고 알려졌다. 게다가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금지약물 복용 탓에 경기 출장을 금지당하자 멀리 떨어진 방글라데시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거나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디디에 드록바의 호소로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이 중단되었다는 일화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물론 축구 경기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어떤 승리도 현실의 권력, 부와 지위의 관계를 바꾸지 못한다. 1970년대 남아메리카 축구의 현란한 움직임과 훌륭한 성적 뒤에는 군부독재의 추악한 책략이 도사리고 있었고 세계인의 환호성 뒤에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각국 축구 협회의 봉건적 지배와 정치적 연줄 관계, 상업주의의 득세, 인종차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축구에 집중하고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득점이 많이 나지 않지만, 전반과 후반으로 나뉜 단순한 틀 속에서 오래 멈추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예측하기 어렵게 변화하는 경기의 흐름은 축구가 지닌 인기의 비결일 듯하다. 역동적이고 융통성 있는 움직임, 복잡하게 짜인 전술과 즉흥적인 반응의 조화같이 다른 경기 종목에서 찾기 힘든 특성, 또 누구든 배우기 쉽고 저렴한 비용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 등이 축구를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게 한 매력의 요체일 것이다.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 (출처: 연합뉴스)


더욱이 골드블랫이 <공은 둥글다: 축구의 세계사>에서 지적하듯이, 단체 경기로서 축구의 스타일은 불균등하고 변화무쌍한 19~20세기 역사의 흐름과 떼어낼 수 없으며 각 지역의 집단적 특성이나 정체성 논의와 연결되어 있다. 실제보다 더 단조롭게 묘사되는 영국 축구는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뛰고 달리며 긴 패스, 크로스 패스, 헤딩 등을 중시한다. 반면 지중해 지역과 중유럽의 축구는 1930년대의 ‘경이로운 팀’ 오스트리아, 다양하고 효율적인 수비가 돋보이는 이탈리아, 그리고 1950년대 ‘왼발의 명수’ 페렌츠 푸스카스가 이끈 헝가리의 사례처럼 공을 다루는 기술과 체계적인 미세 전술을 강조한다. 한편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는 짧은 패스, 탁월한 드리블과 공 간수 능력 등 화려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공격 축구를 지향하고 1970년대 네덜란드는 빠른 공수 전환과 다양한 포지션 소화를 바탕으로 한 ‘토털 사커’를 전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축구는 다른 어떤 경기 종목보다 해당 국가가 지닌 독특성의 단면을 잘 드러내기 때문에 19~20세기 각국 역사의 축소판이자 집단적 은유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루과이의 언론인이자 유명 작가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축구) 경기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축구 경기의 방식과 유형은 각 공동체의 독특한 단면과 이미지를 드러내는 존재 양식이다. 그들이 어떻게 경기를 하는지 말해다오. 난 그들이 누구인지 말하리라.” 이번 대회 초반에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의 선수들이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축구 실력과 대중의 열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들이 결승전까지 멋진 활약을 펼쳐 좋은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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