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어제 군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를 발표하기 전 한·일 정부 간 막후 문안 조정을 했다는 내용의 담화 검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양국 간 문안 협의 때 위안부 모집 주체에 대해 당초 ‘군이 아닌 군의 의향을 수용한 업자’라고 표현했으나 한국의 반대로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로 타협하게 했다고 밝혔다. 비공개 협의가 있었다면 이번 보고서 발표는 일방적으로 합의를 깬 외교적 도발이나 다름없다. 막후 의견교환은 외교에서 흔한 일이다. 그걸 검증의 이름으로 폭로하는 것은 신의 없고 무례한 국가나 하는 야만적 행태이다. 앞으로 이런 이웃을 믿고 진지하게 대화하고 협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은 주권국가다. 담화 발표를 결정한 주체도 그 내용에 책임져야 할 당사자도 일본이다. 그런데 보고서는 “(사전 협의 때) 한국 측이 ‘담화 내용은 일본 정부가 자주적으로 결정한 것일 뿐 아니라 교섭의 대상도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문구 수정을 희망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담화라는 건 형식일 뿐 실제로는 한국의 압력을 받아 왜곡된 내용을 발표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도 아닌데 한국의 압력 때문이라고 핑계를 댄 것이다. 성숙한 국가는 신사답지 않은 구차한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일본의 고노담화 검증을 규탄하는 수요집회 참가자
일본 정부는 이번 담화 검증에도 불구하고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비열하고 교묘한 속임수다. 보고서에는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군의 지시를 받은 업자’로 표현하라고 요구했지만, 일본이 ‘군이 지시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는 대목이 있다. 보고서에 이런 내용을 담은 것은 군이 강제한 증거도 없는데 한국의 요구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표현했다며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는 담화를 수정하지 않아도 수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담화의 취지를 깡그리 부정함으로써 껍데기만 남겨 놓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 인도주의적 범죄, 역사적 범죄 행위를 손으로 가려보겠다고 어리석은 몸짓을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정상 국가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일본의 양심적 시민과 지식인, 정치인들은 이런 인류의 양심에 도전하는 역사 수정주의에 맞서야 한다. 일본을 비정상 국가로 몰아가는 아베 정권에 대해 따져물어야 한다. 일본이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얻은 권위와 명성은 이제 땅에 떨어질 것이다. 일본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아베 정권의 이 무도함을 꺾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이렇게 염치없다는 사실은 이웃으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칼럼]1차 세계대전, 그 후 100년 (0) | 2014.06.26 |
---|---|
[기고]후쿠시마 사고의 7가지 교훈 (0) | 2014.06.26 |
[시론]고노담화 문제, 동아시아가 공유해야 (0) | 2014.06.25 |
[국제칼럼]축구 제전에 환호하는 까닭 (0) | 2014.06.22 |
ISIL과 이라크 내전의 본질 (0) | 2014.06.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