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기승이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 전형적 포퓰리스트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공식 후보로 당선 가능성에 성큼 다가서 있다. 공화당 내부의 주요 인사나 보수 성향의 언론도 트럼프의 거짓, 허풍, 음담패설에 지지를 철회할 정도지만 그의 탄탄한 대중 지지세력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프랑스도 내년 5월 대선을 치르는데 현재 여론조사에서 확고하게 선두를 달리는 후보는 극우 민족전선의 마린 르펜이다. 그는 프랑스의 모든 불행을 이민자 탓으로 돌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유로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도박을 정책으로 내세웠다. 비현실적 환상을 팔며 사회의 일부분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권력을 차지하려는 포퓰리즘의 전략이다.
미국, 프랑스, 한국은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대표적인 민주체제다. 한국이 이런 포퓰리즘의 바람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언제 참신해 보이는 정치신인이 황금빛 낙하산을 타고 혜성처럼 나타나 국민을 증오의 담론이나 달콤한 말로 유혹해 일시적 인기로 후다닥 승리해 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대선에 많은 후보가 등장해 표가 분산되면 30%대나 심지어 20%대의 득표율로 당선될 수도 있다. 한국은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역사적으로 정당이 강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포퓰리스트 등장이 더 수월하다.
과연 민주주의에서 포퓰리즘의 집권을 막는 장치는 없을까. 국민이 절대적으로 지지한다면 당선을 막을 장치는 없다. 하지만 미국보다는 프랑스의 정치제도가 조금 더 안심이다. 프랑스는 결선투표제라는 극단세력 견제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르펜은 두 번 투표하는 프랑스 대선에서 1차에서 1등을 하더라도 결선투표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극단적 르펜을 견제하는 좌우의 온건세력이 결집할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2002년 대선에서 이런 시나리오를 이미 경험했다.
결선투표제는 위험한 후보에 대한 안전장치일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득이 따른다. 우선 기존의 제도보다 더 민주적이다. 일반적으로 비례대표제는 다양한 정치선택이 가능한 민주적 제도이지만 표의 분산으로 정당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정치불안을 가져온다. 반대로 다수제는 정치안정에 이롭지만 소수정당에 불리하다. 결선투표제는 선택의 다양성(1차 투표)과 안정적 정부(결선투표)를 함께 만들어 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결선투표제의 최대 장점은 과반수의 지지율이 당선자에게 강한 정통성을 준다는 사실이다.
또한 결선투표를 앞두고 다양한 정치세력 간의 합종연횡이 일어나는데 이에 대한 국민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어 민주적이고 동시에 효율적이다. 두 투표 사이에 이뤄지는 정치세력 간 협상은 승리할 경우 집권을 위한 연합 형성의 사전 단계다. 단순한 후보 간의 밀담이 아닌 정책적 논의가 우선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런 공식 협상으로 형성된 집권 연합을 투표로 선택하는 권리를 갖는다. 위험한 극단주의자의 당선을 방지하고 민주적 목소리의 다양성을 보장하며, 집권의 안정을 돕는 결선투표제의 유일한 단점은 비용이다. 하지만 트럼프나 르펜과 같은 후보의 당선을 어렵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비용은 충당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도 이런 훌륭한 제도의 도입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특히 결선투표제 도입은 개헌도 필요 없이 선거법만의 개정으로 가능하다. 덧붙여 이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제도다. 헌법 제67조 3항은 대통령 후보가 1인일 경우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득표를 해야 한다고 정했다. 요즘 60%대의 대선 투표율을 감안한다면 이는 실제로 과반수의 득표율을 의미한다. 결선투표제는 비경쟁적 상황에서 최소한의 당선 조건을 경쟁적 구조로 확대하는 것뿐이다. 대통령의 선택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너무나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두 차례에 걸친 투표도 결코 사치가 아니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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