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역사의 미국 대선 TV토론은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로 불린다. 미국 유권자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 시민들이 대선후보들의 정치적 비전과 인성, 지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후보들의 이미지만 부각되며 실체를 오도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미국은 유권자들이 패널로 직접 참여하는 타운홀미팅 형식을 도입하는 등 TV토론의 한계를 넘어서려 노력해 왔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엔 부러움과 모방의 대상이기도 하다. 9일 열린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간 2차 대선 TV토론은 이런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9일(현지시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열린 두번째 TV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뒤에서 클린턴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트럼프의 성폭행 시도와 탈세 의혹, 클린턴 e메일 스캔들 등 인신공격이 난무해 “미 역사상 가장 저급한 토론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인트루이스 _ AP연합뉴스
두 후보가 악수도 하지 않고 시작한 이날 토론은 섹스 전쟁이었다. 트럼프가 과거 성폭행 시도를 자랑하는 발언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됐고, 주제가 정해지지 않는 타운홀미팅 형식이란 점을 감안해도 목불인견 그 자체였다. 트럼프는 클린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물고 늘어지며 “내가 한 것은 말이었지만, 그가 한 것은 행동이었다”고 공격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을 12차례 언급했는데 그중 10차례는 성추문과 연관된 것이었다고 하니 물타기를 통해 곤혹스러운 처지에서 벗어나려 했음이 분명하다.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과 관련,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클린턴을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도대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에 관한 기본 소양이 있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다. 클린턴은 “음담패설이 바로 트럼프”라고 공격했으며 1차 TV토론보다 훨씬 더 네거티브 공격에 치중했다. 현지 언론에서 “근대사상 가장 천박한 토론”이란 평가가 나오는 걸 보면 얼마나 저질 공방이 토론을 지배했는지 알 수 있다.
미국 대선의 중요한 화두는 양극화 해소다. 여기에 이민자 문제가 부각되면서 미국의 근본 가치인 관용과 평등이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내부적 분열은 가속화하고 있다. 트럼프 같은 아웃사이더가 대선후보에 오른 것도 제도권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진지하게 자신의 집권 후 비전과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클린턴도 정부의 무능력에 분노하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미국 민주주의의 추락을 목도하는 데는 극단적 선동과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 탓이 크다. 그러나 국정경험이 풍부한 클린턴도 건강과 도덕성에서 회의적 평가가 만만치 않다. 누가 승리하든 역사에 남을 선거지만 누가 더 대통령에 부적합한지를 가리는 선거로 굳어진 지 오래다. 역사상 가장 지저분한 TV토론이란 불명예가 이번에 추가됐다. 오는 19일 열리는 마지막 TV토론에서는 미국 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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