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호 |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지난 8월24일은 한국과 중국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20주년 되는 날이었다. 한·중 양국은 중국 베이징에서 호혜평등과 평화공존의 원칙에 입각한 선린우호관계를 수립하고 ‘하나의 중국’과 ‘평화적 남북통일’을 상호 지지하는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었다.
한·중 수교의 의미는 크게 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양국은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하였으며, 이념과 체제의 대결 구도를 넘어 동북아의 탈냉전을 주도하였다. 한국에 주는 의미는 국제질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대북 외교적 우위를 확보하는 동시, 한반도의 안보환경을 개선하였다. 1989년 톈안먼사건으로 서방세계로부터 고립되었던 중국에는 외교적 돌파구가 되었으며, 한국의 기술과 투자는 1990년대 중국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2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양국 관계는 각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 중국에 한국도 네 번째 교역국이 되었다. 양국의 교역규모는 1992년 63억달러에서 지난해 2200억달러를 넘었다. 양국의 인적교류는 1992년 13만명에서 지난해 660만명으로 50배 이상 증가하였다. 한류는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중국어는 한국에서 영어에 버금가는 외국어가 되었다. 1992년 수교한 이래 양국관계는 지속적으로 격상돼 왔으며, 1998년 ‘21세기를 향한 협력동반자’,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에 이어 2008년에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으로 걸어가고 있다. (출처: 경향DB)
하지만 이러한 관계의 지속적 발전에도 양국은 최근 몇 년 적지 않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중국은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와 강경한 대북정책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고, 한국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중국의 모호한 자세에 실망하였다. 지난해 12월 중국의 불법어선 단속과정에서의 우리 해경 피살사건으로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이 취소 직전까지 갔으며, 올해 탈북자 북송문제와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 사건으로 양국의 감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2012년은 양국에 수교 20주년의 설렘과 기쁨보다는 오히려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만이 더 큰 한 해였다. 양국관계는 중장기적 비전을 공유하는 ‘전략적’ 협력동반자라기보다는 단기적 국익에 집착하는 ‘전술적’ 협력동반자 혹은 교역이익만 추구하는 ‘경제적’ 협력동반자 쪽에 더 가까웠다. 올해 수교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많은 행사가 있었으나, 양국관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그 어떤 관계도 이견이 없는 완벽한 관계란 없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생길 때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이다. 이제 양국관계도 20년이 되었다. 마냥 모든 것이 좋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중요한 관계가 되었다. 이제 양국관계를 좀 더 전략적으로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난 몇 년을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으며, 한걸음 나아가 양국의 새로운 20년을 위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양국이 선포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에 의거해 세 가지 ‘전략적 협력’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양국은 보다 안전한 안보환경의 조성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간다. 즉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특히 한반도의 미래 건설에 함께 노력할 수 있다. 둘째, 양국은 보다 발전된 경제환경 조성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간다. 즉 지속가능한 경제협력의 합리적, 포괄적 합의의 바탕 위에 공동의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셋째, 양국은 보다 개선된 인간안보 환경 조성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간다. 즉 재해, 범죄, 환경, 테러 등 초국가적, 비군사적 안보사안에 대해 함께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이 가능하다면 양국은 진정한 전략적 협력동반자의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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