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칼럼]스펙터클, 정책, 사람의 삶… 미국의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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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김우창칼럼]스펙터클, 정책, 사람의 삶… 미국의 대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9. 10.

김우창 | 이화여대 석좌교수


 

미국의 저널리스트 매트 테이비는 플로리다에서 열린 대통령 후보 지명 공화당 전당대회를 말하면서, 미트 롬니 후보의 수락연설을 하루 미루었다가 다음날에야 들었다고 쓰고 있다. 들으나마나한 연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는 그러한 정치연설이란 서로 다툼을 벌이는 38명의 자문위원들이 준비한 원고에다 TV 방영, 연설의 무대 연출 효과를 감안하여 만들어내는 쇼일 뿐이라고 말한다. 테이비가 이런 말을 한 것은 물론 그가 롬니 대통령 후보를 높이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화당 후보의 정책 발언은 그가 비판하는 것처럼 사실과 어긋나고 논리가 일관된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한 가지 예만 들자면 롬니 후보는 시간당 임금 22달러50센트를 받던 근로자가 9달러를 받는 직업 둘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오늘의 상황인데, 그만한 노동을 한다면 그에 맞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테이비에 의하면 롬니의 투자회사 베인 캐피털이 인수한 철강회사에서 일어난 것이 바로 그가 말한 것과 똑같은 임금 절하였다.


미국 경제가 원활하지 못한 것은 사실인데, 공화당은 그것을 오바마의 무능 탓이라고 공격한다. 민주당 측의 변호는 경제적 불황의 원인을 만들어낸 것은 전임자 부시인데, 오바마는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에 임기의 많은 부분을 소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정책의 핵심은 세금을 탕감하고 긴축을 강행해 경제를 부양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후보 지명 연설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화당의 감세 정책의 혜택은 연소득 300만달러 이상의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중산 계급의 세금은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감세와 긴축은 환경·식품 안전·교육·인프라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고 기회와 책임의 균등을 보장하는 공동체 윤리를 파괴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DB)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미국이 당면한 국가적 과제--경제, 고용, 과세, 국가부채, 에너지와 환경, 교육, 전쟁과 평화를 두루 언급한 것이었으나, 주조(主調)는 클린턴 전 대통령과 비슷한 관점에서 경제정책의 지표를 확인하고, 기회의 포착과 성공 그리고 실패를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맡겨야 한다는 미국 사회의 기본적인 전제를 확인하면서도, 이러한 과정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그에 필요한 사회의 기본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정부 소임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일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윤리 의식이다. 이러한 정책의 방향과 사회 윤리를 확인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많은 사람에게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어쩌면 감동이 없는 의례적인 연설로 비춰질는지도 모른다. 


위에서 테이비의 정치연설 비판을 말했지만, 더 나아가 오늘의 정치참여란 열광의 스펙터클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는 냉소적 관점을 상기할 수도 있다. 정치적 발언의 공연적 성격을 떠나, 보다 심각하게 문제될 수 있는 것은 정책 프로그램의 진정성이다. 동기가 아니라 정책이 문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상황 속에서의 판단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역시 진정성이 저울질되지 않을 수 없다.


3주 전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는 오바마와 관련, 시사평론가 폴 터프의 글이 게재됐다. 그의 에세이는 빈곤의 문제를 논하면서 거기에 오바마론을 곁들인 것이지만, 오바마의 정치적 지향을 구체적 삶 속에서 느끼게 한다. 


오바마는 대학 졸업 후 시카고의 빈민가에서 3년 동안 사회활동가로 일했다. 빈곤층의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시카고의 로즈랜드 지역을 찾은 터프는 거기에서 오바마의 활동 자취를 발견하고 그 의의를 확인하였다. 오바마는 자기가 시카고 빈민가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로즈랜드에서의 오바마의 주된 관심 대상은 빈곤계층의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은 흔히 학교에서 탈락하고 희망이 없는 암담한 미래를 맞이하는 삶을 살았다. 필요한 것은 경제적 보조에 못지않게 인간적 도움이었다. 오바마는 이들 청소년을 위해 개인지도, 부모상담 등을 제공하는 상담조직을 만들고자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소년기를 보냈던 그는 시카고와 자카르타의 빈곤층을 비교해, 가난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에는 “알아볼 만한 질서”가 있었지만, 시카고의 빈민가 “앨트겔드를 절망의 지역이 되게 하는 것은 그러한 질서가 없다는 것이었다”라고 회고록에 썼다. 터프가 인용하고 있는 그의 회고담은 사회와 정치에 대한 오바마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관찰력을 말해 준다.


오바마는 하버드의 법과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시카고를 떠났다. 그는 죄의식을 느꼈지만, 정치에서 보다 적극적인 도움의 방편을 찾는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나중에 대통령에 입후보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가 내건 중요한 정치과제의 하나는 빈곤 문제였다. 반대의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터프는 오바마가 빈곤층을 위해 한 일이 적지는 않다고 말한다. 경제 불황 대책으로 공공지출을 확대할 때, 민간차원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것은 저소득 계층이었다. 가령 식품교환권 수령자는 2007년의 2700만명에서 2009년, 2010년에는 4500만명이 되었다. 터프는 현금소득만이 아니라, 식품·주택·의료 보조, 실업보험, 세금환불 등의 혜택을 종합하면 존슨 대통령 이후 빈곤층을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한 대통령이 오바마라는, 윌리엄 줄리우스 윌슨 하버드 사회학과 교수의 평가를 인용한다. 그러나 업적이 약속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난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복지제도의 문제점 하나를 아동교육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오바마가 부딪힌 문제의 복잡성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복지제도는 노동과 복지를 연결하는 ‘노동복지’(workfare)의 개념으로 규정된다. 이것은 성격과 종류는 다르지만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으로서, 구직·직업훈련·사회봉사 등으로 표현되는 노동 의지를 확인하면서 저소득자에게 국가적인 보조를 준다는 것이다.


미국의 노동복지제도는 오래 토의되고 시험된 것이지만, 현 제도의 기본은 클린턴 대통령이 공화당과 타협해 확정한 것이다. 이 제도를 교육과 관련해서 말한다면, 깨어진 가정에서 어머니 단독으로 아동을 양육하는 경우, 어머니가 집에 있는 것보다는 직장을 가져야 적극적인 사회보조가 주어진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가정의 보호가 더욱 약화된다는 것을 말한다. 


로즈랜드에서 활동하던 오바마의 관심사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빈곤을 넘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가정환경, 사회환경이었다. 두 부모가 건재하고, 부모가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하고, 정기적으로 교회에 가는 그러한 가정이 아동들의 건강한 성장에 좋은 조건이라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터프에 의하면, 진보적인 경향과 보수적인 경향을 가진 학자들의 연구에서 일치하여) 나오는 보고이다. 이러한 안정된 조건을 갖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이 충동 억제력을 기르지 못하고 폭력과 범죄의 유혹을 이겨내기 어렵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신경과학자들은 이러한 환경의 청소년들은 수업조건을 개선해도 학업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보고를 내놓고 있다. 노동복지에 대한 개선의 노력이 없지는 아니하였지만, 오바마는 이런 개선 노력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여기에서 이런 문제들을 말하는 것은 그것을 논하자는 것보다 오바마의 관심사의 한 가닥을 살피자는 것이다. 오바마는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대통령 취임 후 그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실험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나저러나 그의 연설은 국정 전반을 두루 언급하는 것이어서 빈곤 또는 불우한 가정의 아동문제를 중점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의 연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특히 사람들을 흥분하게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여론조사는 오바마의 인기가 전당대회 이전이나 이후나 롬니 공화당 후보와 아슬아슬한 차이를 나타낸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의 심각한 검토보다는 열광의 스펙터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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