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사드’ 미국이 원하는 길로 가나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기고]‘사드’ 미국이 원하는 길로 가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3. 25.

얼마 전, 우리 사회는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습격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비무장한 민간인을 무기로 공격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판받을 일입니다. 그런데 이곳 전남 강진은 때 아닌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가 광주에서 공부했고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는데 고향이 강진이라는 겁니다. 태어난 면과 마을까지 방송과 신문에 오르내렸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강진 ‘갈○○ 사건’의 악몽을 기억하는 강진사람들은 ‘다산’과 ‘영랑’, ‘청자의 예술혼’이 숨쉬는 문화예술의 남도 답사 일번지로 이미지를 탈바꿈하는 마당에 다시금 폭력과 광기의 고장으로 이미지화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혹시 도시에 나간 자식들이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마음 급한 지역신문에서 김기종씨가 태어난 마을이라는 데에 가서 현장을 취재한 결과 김씨의 아버지가 태어난 곳은 맞지만 김씨는 그의 아버지가 고향을 떠한 이후에 출생한 것으로 밝혀져 그의 고향은 강진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안도했으나 그의 고향이 강진이라는 언론의 낙인을 되돌리기에 강진은 너무 남쪽에 있었습니다.

“바로잡습니다. 김기종씨의 고향은 강진이 아닙니다”라고 정정보도하는 언론은 아직 없습니다.

김씨가 북한에 수차례 다녀왔고 통일운동단체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평소 친북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그의 배후에 북한 또는 종북세력이 있을 것이며, 이를 집중수사하고 있다는 경찰의 발표를 보고 온 국민은 경찰이 시키는 대로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에 관심을 가졌으나 결국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씨를 정치범·사상범으로 만들려는 계획은 실패했고 청와대가 유행시킨 ‘개인적 일탈행위’로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미국은 아무 문제없다고, 한국은 여전히 반미의 무풍지대라며 자국민을 안심시키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반미 종북세력이 기승을 부려 한·미동맹을 위협하고 있다고 엇박자를 내고 있습니다. 반미정서 확산으로 문제를 키우기 전에 빨리 털고 일어나 정상업무에 복귀한 리퍼트 대사는 그런 면에서 훌륭한 외교관입니다.

한·미동맹은 김기종씨의 공격으로 상처받을 만큼 허약하지 않습니다. 전시작전권은 여전히 미국에 있으며 해마다 세계최대 규모의 전쟁연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른바 사드는 결국 한국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기본적으로 미국 주도의 동맹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 요청도 협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지만 이미 미국은 미사일 배치 후보지를 평택, 원주, 부산으로 정했다는 후문입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처럼 미국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한국이 할 적은 있어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과 사드체계 구축처럼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한국이 외면한 적은 역사적으로 없습니다.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도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우리 군대를 파병하고 말았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사드 배치는 합법적입니다. 1954년 11월18일 발효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각 당사국은 상대 당사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중략) 미국은 자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비(配備)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대한민국은 이를 허락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대와 무기가 대한민국 영토에 배치되는 것은 미국의 권리가 됩니다.

사드는 북한과 중국에서 일본의 미군기지와 괌 또는 미 본토를 공격하는 미사일에 대해서는 기능할 수 있지만 - 그것도 아주 낮은 확률로 - 북에서 남으로 발사되는 미사일에 대해서는 기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미국을 위한 정책입니다. 그러나 위 조항에 의해 미국을 위하는 것이 결국 우리를 위하는 것이 되기에 우리는 허락할 의무만 있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자주색 띠) 서훈식을 마치고 접견장으로 향하고 있다. 우측은 리퍼트 미 대사. (출처 : 경향DB)


리퍼트 대사에게 개고기를 선물한 사람은 그가 애완용 개를 무척 사랑하는 것을 몰랐을 것이며 김기종씨의 고향이 강진이라고 가십으로 말한 사람들은 강진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사드는 미국이 요청하지도, 한국정부와 협의하지도 않았으나 미국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을 우리만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은 “주한미군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할 경우 한국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해 반대의사를 표명해 달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중국이 좋아한다, 싫어한다 그런 말이 아니죠. 사드는 주한미군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사드는 미국이 결정할 문제라는 것, 확정적으로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권고적으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정상이 한 나라의 정상에게 주권국가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완전한 주권국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만 모르고 있습니다. “한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 언론은 이런 기사를 매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길이 아니라 미국이 원하는 길입니다. 최소한 2015년 3월에는 그렇습니다.


강광석 | 농부·전농 강진군 농민회 회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