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분명하게 정리해보자.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말이다. 사드 관련 최근 기사들을 읽다가 의문점들이 뭉게구름처럼 하나씩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사안이기에 당연히 ‘태클’을 걸어야 할 물음들이다. 동시에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우선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사드를 미국이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무상으로 남한에 배치한다는 주장은 얼마나 타당한가? 마치 레이저 프린터를 무상으로 받고서는 나중에 비싼 잉크 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둘째, 미국이 사드 배치를 한국에 강제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배치를 요구하는 것인가? 미국이 이미 부지 조사까지 마쳤다는 발표를 했고, 우리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국이 오히려 안달이 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지난해 6월 사드의 한국 배치를 본국에 요청했다는 보도도 있었기에 미국에서 먼저 발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우리가 사드의 효능을 충분히 검증했는가? 아니면 무상으로 준다고 하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인가? 그래도 국가 주권의 문제가 있기에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우리 영토에 반입될 수도 있는 무기체계인 만큼 한·미 간 사전에 철저한 검증과 방어 실패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있어야 옳다.
넷째, 사드가 중국도 견제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만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한국과 미국 중 누가 이를 중국에 설명해야 하나?
중국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 설명을 요구할 경우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에 대한 견제와 대항의 기제가 없어 보인다. 주권국가로서 순순히 이를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다섯째, 북핵 해결에 미온적인 중국에 사드 카드를 활용해 북한 비핵화를 촉진시키려는 방안은 얼마나 효과를 볼 것인가? 사드 배치가 중국의 동북아시아 역내의 사활적(vital) 안보 이익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필자 주변에는 사드 배치로 북핵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통일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의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스스로 생존을 유지해야 하는 무정부 상태의 국제질서 속에서 개별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국가 안보다. 상대의 의도를 확신할 수가 없기에 대신 자신의 국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들은 항상 세력균형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상대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경쟁한다. 특히 경쟁자로 인식되는 국가와는 더 치열하게 경쟁을 한다. 한국에 대한 북한, 미국에 대한 중국이 그러하다.
이렇듯 사드 배치에 대한 논란은 남·북한 간 화해와 협력이 실종되면서 미국·중국 간 세력경쟁 속에서 발아된 지정학의 소산이다. 이를테면, 신중함과 오만함을 모두 보여주는 미국이나 중국은 철저히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세계전략을 짤 것이며, 이들에게 어떤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에 불과하다.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오른쪽)가 16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와 업무협의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근혜 정부는 따라서 미·중 간 협력과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냉철함을 잃지 않고 유연한 외교력을 보여주는 전략이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동시에 북핵 미사일 억지 수단이라는 사드가 우리에게는 장미일 수 있지만 이를 잡으려는 사람은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비확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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