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 영토 분쟁,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포 등에 이어 발생한 북한의 급작스러운 장성택 처형으로 동아시아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를 예측 불가능한 위기로만 인식하는 게 타당한 것인가?
우선, 이번 북한 정변은 김정은이 고모부의 후견체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권력기반 구축에 나서겠다는 선언이거나 또는 권력승계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지난 2년간의 김정일 추도기간을 끝낸 김정은 체제의 능력과 한계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서히 드러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점차 드러날 북한 정권의 실상은 한반도 정세를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최근 동아시아 차원의 국제질서 역시 급격히 부상한 중국과 미국 간 대립 격화로 인해 신(新)양극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양강(兩强) 구도 형성에는 러시아의 상대적인 소외와 일본의 추락도 주요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 안보적 중심축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고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면서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 한다. 이에 맞서 중국은 주변 바다와 하늘을 분쟁지역화하면서 세력권을 확장하겠다는 본심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첨예한 갈등으로 인해 동아시아 전체가 분쟁지역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동아시아 주요 영토분쟁 지역(출처 :경향DB)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역설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당면한 대내외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면도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먼저 경제 악화로 매년 국방 예산을 대폭 삭감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동아시아의 긴장은 줄어든 군비를 동맹국들에 분담시키는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 대립이 격화될수록 한국, 일본, 대만 등은 군비 증강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위기는 빈부격차,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티베트, 신장위구르의 분리독립운동을 잠재우고 내부를 단결시킬 수 있는 호재이다. 중국이 신장된 국력에 상응하는 세력 확장과 일당지배 지속을 위해서는 외부적 위기가 불리하지만은 않다.
일본 역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급격히 하락하는 국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군비증강을 위해 동아시아의 긴장고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갈등 구조로 인해 러시아는 이득보다는 손해가 커 보인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미·중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상대적으로 러시아의 존재감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립 국면은 미·중이 동맹국 관리에 들이는 비용을 줄여준다. 예를 들어 긴장이 고조될수록 동맹국들은 자율성보다는 줄서기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미·중관계가 좋거나 동아시아에 여러 강대국이 공존하는 다극체제보다는 양극체제가 대립의 접점지역에 있는 한국에도 불리하다.
따라서 적당한 긴장이 수반되는 양극체제 형성은 동아시아를 양분해서 관리하려는 미국과 중국에 유리하다. 그러나 위기는 관리가 가능할 때 효용성이 있기 때문에 미·중은 동아시아 질서를 예측가능한 통제권에 두기 위해 협력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정치, 경제적으로 상호의존도가 높은 한·미·중·일과는 달리 북한처럼 고립된 국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양국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래서 미·중은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만들고자 고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동아시아의 미래는 불투명하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동아시아 위기의 양면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동아시아의 위기를 미·중은 물론 주변국과 함께 예측 가능한 선에서 관리하면서, 동시에 답보상태인 남북관계를 해결하고 외교적 자율성을 확대해 나가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동아시아의 안정을 관리할 다자협력체를 우리가 선제적으로 제안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또 다른 강대국 러시아는 미·중 양극체제를 다극체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국가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경제와 군사력 재건을 위해 몸부림치는 아베 정권의 이면에 묻어나는, 쇠락하는 일본의 초조함도 이해하고 배제해서는 안될 것이다. 격동하는 동아시아는 우리에게 보다 넓고 깊은 통찰력과 담대한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박상남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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