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베이징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던 중 북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사형집행 소식을 들었다. 그 회의에 참여한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이 충격을 받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 중국 정부도 북한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2월13일 중국 외교부의 첫 반응은 “이는 북한 내부의 일이다. … 북한이 정치 안정을 유지하고 경제 발전을 실현해 인민생활이 행복해지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이후 ‘한국발’ 북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한국과 다양한 대화채널을 가동했다.
중국은 장성택 사건 이후 상대적으로 안정화되었다고 평가해 온 북·중관계의 성격을 다시 보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김정은 체제를 신속하게 지지해 북한체제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여기에는 새로운 지도부가 좀 더 본격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전개하기를 바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 후 북·중관계는 큰 마찰 없이 굴러가는 듯했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자, 북한도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보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금년 9월 9·19 공동선언 10주년 기념세미나에는 김계관과 리용호 부상이 함께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후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항상 살아있는 카드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장막을 거두고 보니 북한 정치는 여전히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절대권력의 야만적인 속살은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북한의 대외정책 공간은 당분간 크게 위축될 것이다. 북한이 대화공세를 선택하더라도 국제사회가 그 진의를 확인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와 한·중관계를 동시에 발전시켜 미국의 동아시아 재균형에 반발해 온 중국은 6자회담의 추진동력도 약화되었고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도 의식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경향DB)
중국은 학자들과 관료들을 불러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장성택이 북한 개혁파를 대변하고 북·중관계의 유일한 창구였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북한이 금년 들어 유일영도체제를 법제화하고 최룡해를 중국에 보낼 때부터 이 사태를 예견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왔고 그 처리방식도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또한 이 사건을 권력투쟁보다는 이익집단 간 갈등설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도 있다. 그리고 북한의 행동양식에 대해서도 체제 결속을 위한 도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지만, ‘자율성’과 ‘시장’에 기초한 김정은식 경제 브랜드를 통해 위기를 돌파할 가능성도 함께 주목했다.
따라서 중국은 기존의 대북정책 기조 속에서 관리모드로 전환했다. 이것은 지난 11월 개최된 ‘주변외교공작좌담회’에서 제시된 정치적 의리(義), 경제적 이익(利)을 결합한 ‘의리관(義利觀)’을 북한에 적용하는 의미도 있다. 실제로 중국은 매우 절제된 외교적 수사를 사용하고 있고 지속적인 북·중 경제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관련 국가에도 냉정과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2주기를 맞아서는 “북·중관계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건강하게 발전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한반도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에게 때맞춰 연하장을 보내기도 했다. 이것은 북한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없는 중국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지만, 북한의 경계이탈을 막아 향후 동북아 질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 정보를 가장 빨리 파악했던 우리는 “조국의 새벽을 준비하고 곧 다가올 통일의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는 이른바 ‘새벽론’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나쁜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위기관리는 당연하다. 그러나 정반대로 북한이 의표를 찌르고 개혁·개방을 본격화할 경우에도 기민하게 대비하는 전략적 지혜가 필요하다. 오히려 시급한 것은 무성한 ‘설’이나 ‘자극적 언어’가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극장국가’인 북한이 개방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장막 속으로 빛을 넣어주는 국제협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한·중 간 전략적 소통을 내실화하고 중단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다시 가동하는 데도 유리할 것이다.
이희옥 | 성균관대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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